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아찌 Jun 17. 2020

선생님의 찻잔

선생님의 찻잔을 깨뜨린 어릴 적 잊고 싶은 기억


누구나 살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예외 없이 그런 어릴 적 악몽 같은 일이 하나 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 당시 겪은 일이 몹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철없던 10살 되던 때였다.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댔던 초여름이었다.

그때도 당번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매일 두 명씩 짝을 이뤄 급우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교실 정리정돈을 하고,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칠판 지우게도 털어야 했고, 또 담임선생님 시중을 드는 일을 맡아서 하곤 했었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은 희경이라는 여자아이와 강모라는 남자아이가 당번이었다.

담임선생님은 40대 중반인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남편을 사고로 여의고 과부로 사셨고, 사별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웃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또 매사에 예민하셔서 안 그래도 어렵기만 한 선생님을 살갑게 대할 수 없던 터였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고 방과 후 친구들과 공놀이를 할 계획이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랬던 거처럼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갈 무렵엔 가위바위보를 해서 가방 들어주기를 하곤 했다. 그날은 내가 지는 바람에 친구들 가방까지 들고 교실 밖을 나가는 중이었다. 놀 생각으로 신이 나서 가방을 둘러메고 뛰어나가는데 복도에서 당번인 희경이의 어깨를 치고 말았다. 그때 희경이는 하필 들고 있던 선생님의 찻잔을 떨어뜨려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이를 본 선생님이 오셔서 노발대발하시고는 나의 뺨을 때리셨다. 난생처음 맞는 따귀 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잘못을 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순간 오뉴월에 얼음이 되어 버렸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한테 혼이 나는 것도 창피했지만 어렵고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의 노여움을 어찌 풀어드려야 하나 걱정뿐이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고 했거늘 하물며 선생님의 소중한 물건을 깨뜨려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니 너무 당황해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찌저찌 수습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할 기분도 아니어서 낙담한 채 집으로 곧장 가버렸다.

시무룩해진 나는 부엌에 일하고 있는 엄마한테 다가가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장난치다 실수로 선생님 찻잔을 깨뜨려 혼이 났다고 말하고는 못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속상하고 당황했을 어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괜찮다고 등을 토닥이시고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가셨다. 다름 아닌 재래시장 안에 있는 그릇가게였다. 엄마는 선생님의 찻잔 모양이 어떠했냐고 물으셨고 꽃무늬의 예쁜 찻잔이었다고 하니 많은 찻잔 중에 가장 값이 나가 보이는 비슷한 찻잔 하나를 고른 후 내게 건네시고는 내일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하셨다.

이튿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를 하자마자 선생님 책상으로 찻잔을 들고나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님께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심스레 찻잔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물끄러미 한참을 나를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내게 말씀하셨다.

"호야! 어제 선생님이 속상하고 화가 난 건, 찻잔이 비싼 거였거나 조심성 없는 너의 행동 때문이 아니고 죽은 남편이 선물해준 특별한 물건이 깨져서 속상해서 그런 거였어. 어제는 선생님이 미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왈칵 또 한 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고 남편이 선물해준 의미 있는 물건이 아니던가. 그 찻잔이 선생님에게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고 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또 한 번 후회스러웠다. 또 선생님이 어린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거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 일의 충격으로 나는 학교에서는 주눅이 들어 한동안 얌전하게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여름방학이 끝나고 선생님은 휴직계를 내시더니 더 이상 뵐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미국으로 자녀들과 이민을 가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선생님께 누만 끼치고 어떻게든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거 같아 아쉬움이 더욱 컸다.

과학이 발달하여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개구쟁이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돌이키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럼 선생님의 남편과 추억이 깃든 소중한 찻잔을 깨뜨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나 또한 의기소침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마트에 진열된 예쁜 꽃무늬 찻잔을 볼 때나 이렇게 매미소리가 한창인 여름날이 되면 더욱 그때 기억이 나곤 한다. 소식이 끊긴 그 선생님은 아직 살아 계실까? 또 좋은 연인을 만나 이역만리에서 잘 살고 계실까? 찻잔에 커피를 드실 때마다 개구쟁이 었던 어린 제자인 나를 떠올리실까?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악몽 같았던 그때 일이 잊히질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어물전 자랑, 꼴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