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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n 24. 2020

참견, 사람 사는 맛

소외된 약자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 습한 더위는 불쾌지수 상승을 부추긴다. 만사가 귀찮아지는 요즘이다. 더욱이 코로나로 마스크까지 쓰고 다녀야 하는 통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여름 뙤약볕에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진풍경을 내 살아생전에 보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나마 지하철을 타면 에어컨 냉방 하나는 빵빵해서 피서처로는 딱이지 싶다.


그날도 교대역에서 미팅을 마치고 분당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강남역에 내려 환승통로로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연세 지긋한 두 분이 통로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분은 얼추 70대 초반으로 보였고 다른 한 분은 그보다 네다섯 살은 많아 보였다.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실랑이가 벌어진 거 같았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이 많음에도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리는 이가 없었다. 웬만하면 나도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연세 드신 분들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기어이 참견을 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서로 일면 일식도 없는 사이었다.

"어르신들! 날도 더운데 뭐 때문에 이리 싸우십니까?"

참견을 하다 보면, 보통 반응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당신이 뭔 상관인데 끼어드냐고 윽박지르는 경우와 또 하나는 자기 말 좀 들어보라며 하소연 내지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다. 전자인 경우라면 사실 상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흥분해있는 상태인지라 자칫 말리는 시누이가 되어버려 봉변을 당하는 일도 있지만 후자라면 극적으로 화해를 이끌어내어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히 후자인 경우인 거 같아 보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시비가 붙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연장자로 보이는 A 할아버지가 승차를 하고 나서 먼저 경로석에 앉았고, 곧이어 B 할아버지가 그분 옆 빈자리에 뒤따라 앉게 되었다. 몇 정거장이 지난 후 A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는데, 아침에 챙겨 나왔던 주머니 속에 있었던 2만 원이 없더라는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면서 2만 원을 옆자리에 흘렸을 거라는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B 할아버지가 오른쪽 주머니에 뭔가를 넣는 걸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B 할아버지 입장은 달랐다. 날씨도 덥고 하니 손수건을 소지하고 다녔고, 땀을 닦고 난 후 오른쪽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은 거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A 할아버지는 자기가 흘린 돈을 B 할아버지가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고 의심하면서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상황이었고, B 할아버지는 자기를 좀도둑으로 취급하는 것을 몹시 기분 나쁘다고 하고는 환승역에 내려서 가고 있는데, A 할아버지가 끝까지 좇아와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내가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저 영감탱이한테 수모를 당해야 하냐며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듣고 보니 2만 원 가지고 이런 실랑이를 벌이나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론 2만 원이 이분들한테는 작은 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A 할아버지는 B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터라 무슨 말을 해도 설득이 안될 거 같았기에 B 할아버지를 설득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양쪽 말을 듣고 나서 흥분한 두 분을 진정시킨 후, B 할아버지한테 정중히 말을 건넸다.

"어르신!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요.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여주시면 되겠네요."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젊은 양반은 믿음이 가니까 그럼 내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쇼. 돈이 있는지 없는지.."

"아이고.. 그러지 말고 직접 보여주셔요."

B 할아버지는 양쪽 주머니를 뒤집어 까서 보여주었다. 손수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내 생각엔 A 할아버지가 집을 나설 때 2만 원을 가지고 나온 건 맞지만 다른 데서 흘리고선 전철 경로석에서 흘린 걸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근데 하필 그 순간에 B 할아버지는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는 바람에 본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해를 사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 꼴이었다. B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졸지에 좀도둑으로 몰렸으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에 나도 비슷한 경우를 겪어 누명을 쓸 뻔했던 일이 있었다. 퇴근시간에 지하철 2호선을 탔는데 옴짝달싹 못하고 공중에 붕 떠서 갈 만큼 승객이 꽉 찼었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가는 상황에서 가방을 들고 있던 내 손등이 밀려 누군가의 몸에 닿은 거 같았다. 그때 어떤 여성이 "뭐 하는 거예요" 하고는 큰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자기 엉덩이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당황해서 뭐라 대꾸도 못했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주변 시선이 몹시 불쾌했다. 다행히 별 소동 없이 지나갔지만 졸지에 성추행범으로 몰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후론 사람 많은 퇴근시간에는 지하철을 절대 타지 않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때 일이 생각나서 B 할아버지의 억울하게 누명 쓰게 된 기분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던 나랑은 차원이 달랐다. B 할아버지는 아무리 기분이 상한다 하더라도 주머니를 보이며 결백을 주장했으면 될 일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말할 가치도 없다고 대응을 피했던 것도 문제였다.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거 같으니 더욱 의심을 키웠던 것이다. 다행히 A 할아버지는 나의 중재로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못했고 확실하게 생각했던 의심이 착각이었음이 밝혀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명백한 중재자가 있기에 다른 억지를 피울 수도 없었다. 이렇게 상황이 수습되었음에도 또 싸움이 벌어질까 싶어 B 할아버지더러 노여움 푸시고 먼저 가시라고 하고는 같이 따라가려는 A 할아버지를 붙들었다.

B 할아버지가 가신 후 10분 정도 되었을까. A할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시무룩해하시고는 갈 길을 가셨다. 오죽하면 단 돈 2만 원에 저렇게까지 행동하셨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저만치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한국에서 살아가시는 노인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거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고령화 비율 2위, 노인 자살률 1위 아니던가. 할아버지한테 다시 달려가서 지갑에 있는 2만 원을 꺼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할아버지는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멀뚱히 쳐다보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드리는 거니 받으셔도 된다고 하면서 이번엔 흘리지 않게 잘 간수하라고 하고선 물끄러미 쳐다보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 갈 길을 갔다.

세상은 점점 개인주의가 심해져 감에 따라 배려는 고사하고 무관심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 옆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으며,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는 일은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듯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층간소음이 생길 때나 얼굴 붉히며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참견은 관심의 표현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성가신 일이지만 지금은 내남없이 남 인생에 참견을 좀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게 사람 사는 맛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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