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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n 25. 2020

키오스크

자동화 시스템 적응기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햄버거가 당길 때가 있다. 하여 강남에 있는 모 패스트푸드점을 들려 햄버거 세트를 주문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자동화 시스템이라 기계랑 소통해야만 한다. 키오스크(키보드를 사용하지 않고 손에 화면을 접촉하는 터치스크린) 앞에 서서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 세 분이 들어오셨다. 햄버거와 커피를 주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안내해주는 직원도 없고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젊은 친구들이 도와주면 좋으련만 자기 할 것만 하고는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섰다. 어르신들은 처음부터 주문이 완료될 때까지 일사천리로 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하셨다. 고맙다고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나도 처음에 키오스크가 도입됐을 때 사용방법을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촉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도 헷갈려 당황하는데 하물며 기계를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인건비를 줄이고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점점 인간미가 없어지고 삭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주문뿐만 아니라 빵과 고기를 굽고 서빙하는 일조차 로봇이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급변하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와 갈등이 종종 빚어지곤 한다.

지난해 11월 17일, 연신내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노인이 직원과 말다툼을 벌인 일이 있었다.

"내 주문 왜 안 나와"

"전광판에 떴는데 안 가져가셨네요"

"불렀어? 불렀냐고!"

"(주문한 번호를) 못 보시면 어떻게 알아요. 저희가.."

고성 끝에 분을 이기지 못한 노인은 점원의 얼굴을 향해 햄버거가 담긴 종이봉투를 집어던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햄버거 갑질 논란으로 한때 이슈화됐었다. 노인은 무고한 직원에게 햄버거를 던진 파렴치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 노인은 매장 내 자동화 시스템인 키오스크에 익숙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주문한 음식이 나왔지만 번호를 보지 못한 채 30분이 넘도록 기다렸고, 결국 직원에게 항의를 한 것이었다. 많은 노년층들은 패스트푸드점 자동화 시스템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매장과 테이크아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선택을 늦게 하면 다시 첫 화면으로 돌아가며, 글씨가 너무 작고 종류가 많다는 것 등이 어르신들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충을 토로함에도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도입은 날이 갈수록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 초 업계에 따르면 롯데리아는 1,350개 매장 중 825개, 맥도널드는 420여 개 매장 중 250여 개에 키오스크가 도입됐다고 한다. KFC는 지난해 전국 196개 매장에 키오스트를 설치해 '첫 키오스크 100%'를 달성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헐~ 이게 뭔 말인고하니, 키오스크 작동법을 모르면 앞으로는 햄버거를 먹을 수 없다는 얘기다.

키오스크 도입은 이제는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해 영화관, 커피숍, 김밥전문점, 심지어 옷가게까지 앞다퉈 확산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편리함과 인건비 절감, 회전율 증가에 따른 매출 증가 등의 이유가 있었다. 젊은 층에는 키오스크가 편리한 문화이지만 노년층은 도무지 달갑지가 않다. 키오스크 주문에 당황해 갈 곳 잃은 눈동자를 굴려보지만 조금만 늦어지면 뒤에서 눈총이 쏟아지기 일쑤다. 기계를 자유롭게 다루지 못하는 스스로에 시대에 뒤쳐지는 거 같아서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심하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햄버거 갑질 논란이 단순 '갑질'인 것인지,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감에 대해 우리가 무심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요 이상의 기능이 탑재된 복잡한 고가의 스마트폰을 누구나 사용하듯,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해야 할 자리에 기계가 대신하는 현실에 인간은 앞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 답을 못 찾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라도 나서서 반드시 답을 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가 IT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나조차도 이젠 편리함보다는 SF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가 곧 도래하겠다는 생각에 섬뜩한 두려움마저 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왕 이렇게  거라면, 나는 디지털 기계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덧입히면 어떨까라는 영악(靈惡)한 생각을 해 보았다.

"어르신! 페도라 중절모가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 주문하신 제품보다는 제가 체질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드리면 어떨까요? "

"잠시만 기다리시면 주문하신 음식이 정성껏 준비되어 나올 겁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카메라로 인식된 정보로 따뜻한 멘트라도 해주면 덜 당황하고 덜 삭막하지 않을까? 어차피 기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일 테니 조금만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기계를 만들면 좀 낫지 않을까? 만약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친절한 키오스크가 나온다면 그 기계가 보고 싶고 정이 들어 매점을 방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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