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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Jun 15. 2020

[에세이 105] 시절 인연

[여니의 크루에세이]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내향적인 성향이 조금 더 강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자극과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올해 몇 차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배워보고 싶었던 걸 배우는 과정에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났고, 소설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서로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러나 모임 이후로 다시 또 보게 되는 ‘인연’은 없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 바쁜 현생 와중에도 인연을 맺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와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질문을 던진 하비엘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저 질문은 나에게 꽤 마음이 아픈 질문이었다. 새롭게 만난 인연을 만난 것보다는, 깊은 관계였던 인연을 정리한 게 올해 상반기에 가장 크게 남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관계와 인연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던 참이었다. 참 애썼던 관계였고, 그럼에도 끝났으니 마음 꼴은 말도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고, 가장 가까운 관계도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이십 대 끝자락의 요즘. 문득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나는 사람과 사랑이란 가치가 중요한 사람인데,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마음. 이런 마음을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내가 힘들 때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주는 내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나의 초조함은 어리석고 짠하고 귀여운 마음이 되는 그런 사람들. 나의 진짜 인연으로 남아있는 사람들,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할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라는 걸 또 한동안 잊고 있었나 보다. 결국 사람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나는 오랜 인연인 이들과 이들의 사랑으로 나의 나날을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참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인연들은 애쓰지 않은 관계들이었다. 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 에너지를 쥐어 짜내어 만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과 마음이 동해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노력과 애씀이 다를 뿐. 서로 좋자고 만나는 건데 애쓰는 관계는 나를 갉아먹었다. 


불교에는 '시절 인연'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한다.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한다는 시절 인연. 인연이란 결국 정말 그런 것 같다. 구태여 잡고 있는 관계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때와 나의 때가 맞고, 마음의 아귀가 들어맞는다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참 많이 애썼던 나의 관계도 어찌 보면 끝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나, 허무한 마음도 더러 들지만 그렇게 애써봤기에 또 알 것도 같다. 관계에서도 언제나 가장 중요한 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말이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를 돌보며, 그리고 이미 나의 시절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먼저 충분히 감사하며 더 이상 인연에 초조해지지 않으리라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물론 불청객처럼 때때로 초조함이 찾아오겠지만, 굳건한 내 사람들을 떠올려야지. 고맙다고 표현 한 번 더 하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다시 내가 받은 질문으로 되돌아가자면,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없어요! 앞으로 반년 남은 올해에는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걸 알았으니 나의 시절 인연은 딱 제 속도만큼만 걸으며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인연에 감사하며, 열린 마음으로 느긋하게. 





다음 타자인 정인님에게 보내는 질문이에요 :) 


반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지난 반년 동안 무얼 가장 많이 했나요?

[에세이 104] 벌써 2020년이?!


가족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에세이 103]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아내이고 싶나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왜 선택하지 않을 건가요?

[에세이 102] 우리의 행복이 두배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문득 어떨 때, 아빠 혹은 엄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나요?

[에세이 101] 내가 근수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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