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의 크루에세이]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내향적인 성향이 조금 더 강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자극과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올해 몇 차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배워보고 싶었던 걸 배우는 과정에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났고, 소설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서로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러나 모임 이후로 다시 또 보게 되는 ‘인연’은 없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 바쁜 현생 와중에도 인연을 맺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와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질문을 던진 하비엘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저 질문은 나에게 꽤 마음이 아픈 질문이었다. 새롭게 만난 인연을 만난 것보다는, 깊은 관계였던 인연을 정리한 게 올해 상반기에 가장 크게 남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관계와 인연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던 참이었다. 참 애썼던 관계였고, 그럼에도 끝났으니 마음 꼴은 말도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고, 가장 가까운 관계도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이십 대 끝자락의 요즘. 문득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나는 사람과 사랑이란 가치가 중요한 사람인데,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마음. 이런 마음을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내가 힘들 때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주는 내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나의 초조함은 어리석고 짠하고 귀여운 마음이 되는 그런 사람들. 나의 진짜 인연으로 남아있는 사람들,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할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라는 걸 또 한동안 잊고 있었나 보다. 결국 사람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나는 오랜 인연인 이들과 이들의 사랑으로 나의 나날을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참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인연들은 애쓰지 않은 관계들이었다. 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 에너지를 쥐어 짜내어 만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과 마음이 동해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선에서의 노력과 애씀이 다를 뿐. 서로 좋자고 만나는 건데 애쓰는 관계는 나를 갉아먹었다.
불교에는 '시절 인연'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한다.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한다는 시절 인연. 인연이란 결국 정말 그런 것 같다. 구태여 잡고 있는 관계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때와 나의 때가 맞고, 마음의 아귀가 들어맞는다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참 많이 애썼던 나의 관계도 어찌 보면 끝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나, 허무한 마음도 더러 들지만 그렇게 애써봤기에 또 알 것도 같다. 관계에서도 언제나 가장 중요한 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말이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를 돌보며, 그리고 이미 나의 시절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먼저 충분히 감사하며 더 이상 인연에 초조해지지 않으리라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물론 불청객처럼 때때로 초조함이 찾아오겠지만, 굳건한 내 사람들을 떠올려야지. 고맙다고 표현 한 번 더 하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다시 내가 받은 질문으로 되돌아가자면,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
없어요! 앞으로 반년 남은 올해에는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걸 알았으니 나의 시절 인연은 딱 제 속도만큼만 걸으며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인연에 감사하며, 열린 마음으로 느긋하게.
다음 타자인 정인님에게 보내는 질문이에요 :)
반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지난 반년 동안 무얼 가장 많이 했나요?
•가족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아내이고 싶나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왜 선택하지 않을 건가요?
•내가 문득 어떨 때, 아빠 혹은 엄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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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저너리는 일론 머스크를 만나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다 같이 우주여행을 가자며 출발한 비영리 소모임(이자 우주 먼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청춘들을 응원하자는 마음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브런치와 팟캐스트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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