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크루 에세이] 반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지난 크루 에세이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행복을 미루지 않겠다고 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받아 든 요즘의 나는 어떤가?
새로운 해의 반이 지났다.
올 해는 나에게 참 어영부영 온 해였다. 이렇게나 오래 머물지 모르던 직장에서 햇수로 3년이 되는 해였고 오래 머물지 몰랐으니 이렇게 이 일에 삶의 많은 분량을 내어줄지도 몰랐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다른 곳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준비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를 다시면서 생활 패턴은 정착했으나 정작 내 마음이 정착할 공간은 좁아졌다.
녹아 없어지는 '나의 삶'이라는 빙하 위 '일'이라는 조각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겠다고 애쓰던 모습이라니. 그런 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도, 해내거나 도전하고 싶은 것도 별 없이 벌써 한 해의 반이 훌쩍 갔다.
일을 하면서 점점 더 깨달았다. 너무 일찍 (너무 큰 프로젝트의) PM이 되었다.
새로운 명함, 연봉협상, 새 팀원과 R&R을 정할 때만 해도 이 무게감을 알 수 없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디라는데, 나는 이게 왕관 인지도 모르겠고 무게는 죽을 맛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힘이 되어주고 나의 무게를 줄여주려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있는 법. 초보 PM은 상반기를 통으로 일에 내어줘 버렸다.(공공의 적 코로나도 이 대혼란에 한몫했다.) 나를 아끼는 우리 팀장님은 내게 항상 혼자 다 책임지려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존감이 끝을 모르고 떨어지니 우선은 나를 갈아서라도 이 모래성은 지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믿고 이 자리에 앉혀준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성장이라도.
그러다 보니 삶의 경계는 쉽게 무너졌다.
일상, 여유, 취미와 관심사, 일 외의 나
이런 것들은 미루고 사라지는 것이 쉽지 새로 쌓아가기는 참 어렵다는 걸 배우고 있다. (배우지 않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참 삶이 꾸준한 배움이다.) 요즘의 내가 일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나를 참 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 계속 묻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고.
어쩌면 이 바쁨과 혼돈은 일을 하는 내내 계속될 수도 있는데, 그걸 세차게 마주한다고 무의식적으로 포기한 일상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성장의 대가로 삶의 일부를 내어준 나를 추후에 비난하지 않겠냐고.
사실 지금 내가 지킬 수 없는 여유를 가지겠다, 한 순간씩 일상을 늘리려고 노력하겠다 는 말이 거짓말인 게 뻔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뭐 하나 뛰어들면 물 불 안 가리고 어떻게든 해쳐가지만 완벽한 멀티태스킹은 서툴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계속 물어보면, 내가 계속 나에게 물어보고 대답하다 보면 나의 욕심과 현실 그리고 이상 사이에서 모래성을 한 스무 번쯤 쌓아보면 나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게 '일'이라면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 비슷한 게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일을 때려치워도, 내가 더 이상 '일'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우지 않는 사람이 되더라도 내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던 드라마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서울의 야경에 우리는 서로 위로받는다고, 나만 이렇게 치열한 게 아니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퇴근 택시가 버스보다 익숙한 요즘. 서울의 고속도로에 위로받는 지금의 나는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이나 나중에 곱씹을 올해의 여행사진 하나 없지만 누군가의 위로는 되겠다 싶어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조언을 들어보니 역시 내 옷은 내가 골라야 하나보다. 그래도 이 질문들에 옹알이하듯 대답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나도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랬다고. 한 걸음 떨어져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때 이 글을 다시 꺼내봐야겠다.
내게 해주고 싶은 말 보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은 요즘.
2020년 상반기가 '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흡수되어버리기 전에 계속 질문을 늘려가야겠다.
내가 일인지 일이 나인지, 대답보단 질문으로 가득한 삶은 보내는 요즘,
다음 순서인 줄리아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매일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있나요?
•지난 반년 동안 새롭게 만난 인연이 있나요?지난 반년 새 [에세이 105] 시절 인연
•지난 반년 동안 무얼 가장 많이 했나요?
•가족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아내이고 싶나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왜 선택하지 않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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