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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Jun 02. 2020

팔이 짧아 슬픈 쭈꾸미

(ft. 위장전술)

쭈꾸미군을 처음 만난 건

내 나이 스무 살.


철컥

철컥

철컥


생생하게 기차소리가 들리던

철길 옆 포장마차.

그곳에서 우린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지.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한 날

너의 몰골은 이렇지 아니했는데.,


뽀오얀 피부에 갓 목욕을 끝낸 듯

그저 하얗고

다소 새초롬하게 부어 있었더랬는데.,


이제 와서 만나게 되는 주꾸미군 너는

이리저리 꾸미고 감추고

정체성을 숨기는데 여념이 없구나.


무엇이 부끄러운 걸까.

아니

무엇이 두려운 걸까.


굳이 스스로를 애써 감추지 않아도

세상에 찌들 대로 찌든 나는


어차피

쭈꾸미군 너를.


너만을 오롯이 받아들일 자신이 없건마는.


어쩌면 너는

계속해서 불필요한 수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쭈꾸미군 너는

어쩌면 처음부터 솔직하지 않았는지도.


쭈.꾸.미.


아앜... 이름이 쭈꾸미래~

쓰잘 데 없는 웃음을 한참이나 안겨줬던 넌

세상 처음 만나는 

신기한 생명체인 줄로만 알았는데


short arm octopus


그저 팔이 짧은 문어일 뿐이었단.


앙증맞은 몸뚱이 하나만 믿고

오기와 패기만으로 마구 들이대던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반적인 존재였단 것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넌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가 본명이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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