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에 청소가 하고 싶은 이유도 알겠다.
며칠 전에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손목을 살짝 삐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며칠 동안 피아노 치는 것도, 요가 자세 잡는 것도, 아이 안는 것도 힘들었다.
부엌일에서 잠깐 손을 놓기로 하고 저녁 한 끼를 치킨을 시켜 먹었다. 요리하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저녁 시간이 여유로운 데다가 일을 안 하니 손목 통증도 줄어들었다. 이럴 때 그냥 쉬면 금방 나을 텐데, 가만있질 못해서 상황이 꼬인다.
양치질을 하던 도중 갑자기 세면대 구석에 낀 곰팡이가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변기도 어째 더럽고, 욕조도 마찬가지다. 가만 놔둘 수 없지. 베이킹파우더를 들고 와서 뿌리고 닦았다. 화장실 여기저기를 청소하고 나니, 안방 화장실 생각이 난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지. 안방 화장실도 반짝반짝하게 청소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손목이 욱신거린다.
남편은 청개구리냐고 놀린다. ‘왜 갑자기 청소를 해?’ 그냥 쉬지 그랬냐고 말을 던진다. 아니 나도 쉬려고 그랬는데…… 그게 그리 됐네. 그러게, 그 곰팡이가 어제도 그저께도 있었던 거 같은데, 왜 오늘 나는 작정을 한 걸까?
가만 보면 나는 아플 때 꼭 청소가 하고 싶어 진다. 최근에 사랑니 뽑고 왔을 때도 갑자기 구강 세척기 청소가 하고 싶었다. 몸이 아프면 청소기를 돌리고, 감기에 걸려서 목이 아프면 수저를 삶고 있다. 자리보전하고 누워야 할 정도가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없겠지만, 뭔가 꾀병 부리듯 컨디션 좋게 아플 땐 치워야 할 게 눈에 쏙쏙 들어온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건 병이 더 심해졌을 경우를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답이 나왔다. 주부이니깐 깨끗한 살림살이 유지가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강한데, 내가 더 많이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때가 타도 훨씬 더 많이 타고, 더 많이 더러워질 테니깐 지금이라도 닦아 놔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혹시 친정 엄마나 누가 와도 더럽다는 인상을 받으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거다. 그리고 집이 더러워서 아픈 걸까 의심도 하게 되기도 하고……
첫 번째 이유가 주부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다. 아프면 활동 반경이 줄어들니깐, 오래 머무는 집안 구석구석에 눈길이 더 많이 간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의무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픔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로 뭔가 한다는 쾌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같다.
숙제할 때나 시험공부할 때 꼭 책상 정리나 방 청소가 재밌는 이유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공부방과 책상으로 공간이 제한되기 때문에 그곳에서 의무 대신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아닐까?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것 이자 해야 하는 것이 공부뿐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자니 정리정돈 정도가 되는 거지.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과제 제출을 하고 나면 책상에 앉을 일이 당분간 없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리해둘까 생각도 드는 게 아닐까?
거참 하라는 것 안 하고, 딴짓하다가 골병든 변명이 참 길기도 길다. 어째 쓰고 보니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에서 본 것 같은 의식의 흐름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