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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Sep 05. 2022

먹는 재미가 곧 사는 재미

기록이 곧 나 자신

기록과 다시보기 덕분에 ‘사는 재미를 찾을 방법’을 찾게 됐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고, 다시 읽지 않았다면 들여다보지 못했을 내 마음.   


며칠 전 처음으로 인스타에서 릴스를 만들어봤다. 첫째의 여름방학 동안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도식들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밥이 소재가 되는 벤다이어그램을 두 번 그렸는데, 그때마다 밥을 지겹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겨운 것이었다니… 생각하지도 못했다. 사실 충격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게. 왜냐면 외국에 살 땐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즐겨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었고, 외국이 아니더라도 유행하는 음식이나 맛집 찾는 데 정성을 쏟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한탄과 동시에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단톡방이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동네 이웃이 있는데, 그녀는 먹는 데 관심이 많아서 동네 맛집은 물론이고 인근 도시의 식당과 디저트 가게 정보까지 꿰차고 있다. 내가 그녀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 돌도 씹어먹을 나이는 아니지만 왕성한 소화력과 체력이 뒷받침되는 나이이다. 그녀가 이런저런 맛집과 먹거리 정보를 단톡방에 나눠주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지만 꾹 참았었다. “나도 그 나이 때는 많이 먹었는데, 이젠 안돼…… 지금 많이 즐겨.”  쓰고 보니 정말 라떼다. 잘 참았다.


이젠 장이 안 좋아서(원래도 안 좋았지만 지금은 더욱 예민하다) 자극적인 음식은 못 먹는다. 아이들 입에 맞춰서 만든 순한 음식에 길들여졌고, 아이들 입에 맞는 익숙한 음식을 먹다 보니 음식으로부터 즐거운 자극을 받을 일이 없다. 안전한 길로 일방통행. 게다가 소도시에 살아서 다양한 먹거리를 접하는 게 어려운 환경에 있기도 하다. 가끔씩 보는 방송 <나혼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국음식을 볼 때면 정말 말 그대로 청춘남녀의 이국적인 놀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처럼 나 혼자 뭐 해 먹겠다고 재료와 양념 샀다가 못 먹고 버리면 돈 낭비에 시간 낭비, 자원 낭비이다.


나이 듦이란 게 이런 것인가. 순한 맛에 익숙해지는 게 필연적인가. 어른들이 왜 맨날 김치찌개, 된장찌개 찾았는지 이해가 되는 나이인가. 아, 당연하구나. 내가 그 나이이니깐. 신체적으로도 배탈이 나니깐 경험으로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서글프다. 그래도 반백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러면 아직은 한창 더 즐기고 맛볼 나이가 아닌가, 부모님의 그 시절과 지금은 다르니깐. 그래 이렇게 포기해선 안된다.  


줄리 앤 줄리아가 생각났다.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내용은 대충 안다. 나도 줄리처럼 요리를 하면서 활력을 만들어볼까? 프로젝트로 발전시켜 볼 마음은 없지만, 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특식처럼 도전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외국 살 때 돌아가면서 맨날 먹던 인도 카레, 케밥, 할랄 푸드, 부리또, 타코, 팟타이, 샌드위치 등, 쉬운 것부터 도전해보면 어떤가.


지난 토요일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켰는데,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김지훈이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양배추를 썰어서 양배추 피클을 만들더니 이것저것 재료를 챙겨서 곧장 키토 김밥을 만들었다. 이어서 팟타이 소스를 만들고, 닭가슴살과 새우를 순식간에 손질하여 팟타이를 만들었고, 땡모반도 수박을 휘리릭 했더니 한 잔이 곧 완성되었다. 물론 편집 덕도 있겠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그렇게 대충! 정성껏! 만드는 걸 보곤 입이 떡 벌어졌다. 요리사도 아닌 일반 남성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재빠른 손놀림이라서 부러웠다. 나는 레시피 찾고, 재료 챙기고, 늘어놓고, 재료 다듬으면서 손 씻는 걸 수십 번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을 수십 개 써야 나오는 요리인데, 그래서 큰 마음먹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는 놀이하듯 요리를 했다. 와……리스펙.




그래 나도 그처럼 해보는 거다. 대충! 정성껏! 놀이하듯!  

놀이하듯 요리하면, 놀이가 일상이 되니깐 사는 게 재밌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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