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함의 미학
아이가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 되면 저녁은 뭘 먹나 고민이 시작된다. 냉장고 한번 열어서 안에 있는 반찬과 식재료를 확인해 본다. 오늘은 엄마한테 받아온 밑반찬이 많다. 이런 날은 국이나 찌개 하나만 끓여서 먹으면 되니깐 수월하다.
10월 초에 시가에 갔을 때 시어머니가 여러 김치와 밑반찬을 준비하셨다며 꺼내셨다. 9월 추석 때 양가에서 받아 온 음식들이 아직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상태였다. 남편이 꼭 먹고 싶은 반찬만 조금씩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손이 큰 시어머니인지라 소용없었다. 한동안 냉장고 문 열 때마다 앞 뒤, 위아래로 꽉 찬 냉장실이 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밑반찬이 있으면 좋긴 한데, 아주 길어 봤자 사흘 정도 맛있게 먹는다. 이후로는 물려서 안 먹으니깐 냉장고에서 안 꺼내게 되고, 그럼 냉장고 속에서 맛이 없어져서 손 대기 싫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시가에서 받아 온 음식에 대처하는 요령이 생겼는데, 1.5배의 양을 꺼내 놓는다. 반찬을 빨리 많이 먹어버리는 거다.
거의 한 달 만에 냉장실에 여백이 생겼다. 덩달아 숨이 트인다. 아들 입맛 챙기고, 내 손 덜어 주려고 챙겨주시는 어머니 마음 잘 알지만, 밑반찬이란 게 많이 있다고 마냥 즐겁지 않은 내 마음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