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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Jul 28. 2022

19. 왜 집이 작아졌어?

나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사이

전도사님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진짜로 죄가 인정되었는지, 절차대로 추방당했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쓴 탄원서가 힘을 발휘해 무마되었는지…


진실과 맞바꾼 비행기표를 들고 일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게이트를 나오는 우리를 보며 엄마는 항상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고 했다. 호주 날씨 특성상 살이 금방 타고 선크림을 잘 챙겨 바르지 않으니 얼룩덜룩하게 까매진 건 맞는데, 아마 엄마는 “엄마가 없어서 힘들지?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해.”라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했던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우리는 서울에서도 부촌이라고 하는 동네의 주택가에 살았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차를 타고 간 곳은 예전에 살던 집이 아니었다. 같은 동네는 맞지만 3층짜리 상가건물의 2층, 즉 상가주택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방 두 개, 거실 한 개, 욕실 한 개. 이전 집과는 많이 다른 공간이었지만 그때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기껏해야 두 달만 머물다 호주로 돌아가니까. 그리고 물리적인 공간이 어떻든 ‘집=home’이라는 곳이 주는 의미가 더 중요했고.


엄마는 우리가 떠난 후로 더 이상 큰 집이 필요 없어졌다고 말하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유학 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돈 좀 아껴 쓰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언젠가부터 모든 이야기는 돈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우리 자매는 엄마가 쓰던 안방에 짐을 풀고 그 방을 썼다. 엄마는 소파에서 주무셨고 아빠는 작은방에서 주무셨다. 두 달 동안 어릴 때 주말마다 가던 도서관, 교보문고, 학교 등을 가보고 인사드려야 하는 어른들도 만났다. 다시 일 년 동안 쓸 생필품이나 옷, 등을 사러 다니기도 했고. 특히 나는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상태여서 병원도 부지런히 다녔다.


전도사님과 끝났다는 생각, 가족과 함께 있다는 생각 등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걱정이랍시고 모진 말을 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항상 먹고 싶다는 걸 해주셨고, 좋은 것들을 사주셨다. 십 대의 나이가 되고부터는 그냥 그분의 말투가 그럴 뿐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평범한 날을 보내고 동생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옆을 보니 동생은 눕자마자 잠들었고 나도 이내 잠에 빠졌는데, 잠결에 큰 목소리가 들려 눈을 뜨게 됐다.


“아니, 그 **랑 문자를 왜 했냐고!!!” 생전 처음 듣는 아빠의 큰 목소리였다.


“제발 조용히 말해. 애들 깨면 어쩌려고…” 엄마의 목소리였다.


“내가 가서 확 엎어 버려야 정신 차리지?” 아빠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분명 술에 취한 상태였다.


“파트를 맞춰야 되는데 어떻게 연락을 안 해? 말이 되는 걸로 트집을 잡아. 둘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오페라단 전체가 만나서 연습하는 거라고. 내용을 봐봐.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


“아 **!!!!!!!! 내가 그러게 다 그만두고 집에만 쳐 자빠져 있으랬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과 나를 분리해두었던 안방 문이 쩍 하고 금이 갔고 거실 전등 빛이 벌어진 문짝 사이로 번쩍 새어 들어왔다.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싸운 적이 없으셨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쳤다. 이번이 처음인 걸까? 그동안 자주 그랬을까? 언제부터 그런 걸까? 이유가 뭘까? 혹시 엄마가 맞고 살았나? 혹시 우리 때문인가?


그저 숨을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했다. 더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집이 왜 작아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더 많은 질문이 떠오르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 했다.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실은 평안했고 나도 어제 일이 그저 하룻밤 꿈 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엄마와 나는 마치 분수대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를 향해 빙빙 돌고 있는 듯, 우리 사이에 갑자기 커다란 장애물이 생긴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도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있었나 보다. 


내가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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