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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Jul 25. 2022

18. 거짓 탄원서

다 끝내고 싶다

전화기 너머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고함이 들려왔고 전화기 밖에까지 들린 소리에 다림질을 하던 엘렌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올라가서 전화를 받았다.


“야 집 나갔음 됐지 얻다 대고 누구를 신고해? 미쳤냐?”


“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십여 분 동안 다다다다 쏘아대는 앙칼진 목소리.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에서 전도사님을 이민국(정확히는 출입국사무소 - Immigration Center)에 아동학대 및 방임 등으로 신고를 했고 기관에서 조사를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내용이었고 학교에서도 일체 언급이 없었기에 나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됐고, 네가 빨리 편지를 써. 내일 내가 가지러 갈 테니까 빨리 써. 다 네가 꾸며낸 이야기고 거짓말이라고 쓰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써놔.”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겠다고 할 수도, 그러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주소 불러봐. 내일 오후에 내가 가지러 갈 거야. 똑바로 안 쓰면 비행기표 찢어버리는 수가 있어! 한국 못 가는 줄 알아!!”


아… 한 달 뒤면 일 년 만에 한국에 처음 가는 날인데, 그 티켓을 전도사님이 갖고 계셨던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시간부로 나는 다시 온몸이 굳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식사 때 엘렌이 내게 괜찮냐고, 아무 일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저 다 괜찮다고 둘러댔더니 낌새가 이상했는지, 아까 누구 전화를 받았는지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 It was her…” (그분이었어요.)


“What? Why didn’t you put me on? If she ever calls again, just give it to me and never talk to her again. I’ll deal with her. What did she want, anyway?!” (뭐? 왜 나를 안 바꿨어? 만약 또 그 사람이 전화를 하면 그냥 나한테 바꿔주고 더 이상 말 섞지 마. 내가 처리할게. 근데 전화는 왜 했대?!)


“…just angry about what had happened to her…” (… 그냥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화가 나셔서…)


그날 밤에 나는 내 손으로 탄원서를 썼다.


전도사님은 누구를 해할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우리 자매는 그분으로부터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반항심이 들어 학교에 허위사실을 알린 사람은 나다. 학교에서 과하게 반응해서 억울한 누명이 씌워진 거다. 전도사님은 정직하고 성실한 성직자이자 부모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빨리 티켓을 받고 이 모든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다음날 오후, 전도사님이 집 앞에 왔노라고 전화를 했다. 나는 거실에서 엘렌, 찰리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비가 잔뜩 내리는 날씨였다. 엘렌에게 집 앞에 누가 왔으니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엘렌이 갑자기 티비 소리를 무음으로 바꾸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Who? Is it her?” (누구? 그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Who does she think she is? Coming here? Unbelievable. Let me talk to her. Don’t ever talk to her alone.” (자기가 뭐라고 여기까지 왔대? 말도 안 돼. 내가 얘기할게. 절대 혼자서 만나지 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엘렌에게 손사래를 치며, 내 비행기표를 갖다 주러 오신 거니 걱정 말라고 말하고 방으로 가서 탄원서를 옷 속에 숨겨서 나왔다.


현관에서 전도사님의 차 문 까지 몇 미터 안 되는 거리지만 세차게 오는 빗속을 뛰어가니 꽤 숨이 찼다. 차 안에 전도사님과 나, 거의 6개월 만의 재회였다.


“썼어? 줘봐.” 인사도 생략한 채 전도사님은 내 손에 있던 탄원서를 낚아채더니 눈으로 쓱 읽어보셨다.


안 그래도 비쩍 마르신 분이 그 사이 더 해골처럼 앙상해진 것 같았다. 우리 자매가 나간 뒤로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았을 테고 또 이민국에서도 조사를 받고… 힘드시긴 했을 것 같다.


“잘 썼네. 그러게 애초에 왜 학교에 얘기를 해가지고는. 원래 한국에서는 그 정도 체벌은 다 한다고. 다 너 가르치려고 하는 건데, 안 그래?”


“…………” 그저 체벌이었구나. 미성년자가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집에 와서 타일 바닥에 토를 하는 딸은 왜 체벌하지 않았고? 그 토를 닦아내던 내가 왜 체벌을 받아 마땅했는지 묻고 싶었다.


“혹시 이민국에서 연락 오거나 하면 다 네 잘못이라고 말해. 사춘기라서 반항한 거고 다 네가 지어낸 말이라고.”


“………….”


“가! 진짜 징글징글하니까.”


나는 차 문을 닫고 빗속을 걸어 현관으로 갔다. 이대로 빗물과 같이 땅으로 흡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붙들고 잠시 멍하니 있으니 갑자기 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엘렌이 보였다.


“Are you OK? Did she say something to you? What did she do?” (너 괜찮아? 그 사람이 너한테 무슨 말했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티켓을 보이며 이제 다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제 정말 끝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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