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Aptitude Test라는 일종의 적성검사를 실시했다. 그때는 몇 백개나 되는 문항에 일일이 표기를 하려니 이걸 귀찮게 왜 하나 싶었는데, 그 결과가 나오고 나서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검사 결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학습 스타일에 대한 결과였다. 학습 스타일은 방사형 그래프로 제시되었고 여러 스타일이 있었는데, 나는 Visual(시각)과 Tactile(촉각) Learning Style(학습 스타일)로 나타났다. 즉 강의를 ‘듣는’것 보다 직접 보고 참여하는 방식의 배움의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신기하네~ 좋은 정보네~ 하며 넘겼는데, 검사 결과가 공개되고부터 교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학습 스타일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책상 및 자리 재배치를 실시했다. 예를 들면 이런 원리였다. 시각적 스타일+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는 선생님과 스크린이 잘 보이는 앞+중앙 쪽으로 배치하고, Auditory(청각)+소극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는 스크린을 직접적으로 바라보게 하기보다 (시각을 자극하면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교실 사이드의 스피커 쪽에 가까운 곳에 배치를 하는 것이다.
책상의 위치가 제각각이고, 방향도 제멋대로인 교실이라니! 나란히 나란히 정렬되어있던 한국 학교의 교실 모습에 익숙하다면 호주 학교의 교실은 그야말로 카오스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책상이 꼭 나란히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수업에 집중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우리가 옳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규칙이나 규범도 누군가가 우리를 수월하게 통제하기 위한 틀은 아니었을까? 애초에 통제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우리 반에는 트로이(Troy)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아주 산만한 편이었고 수업 도중 돌발행동을 자주 보이는 편이었다. 예컨대 수업 중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장에 가서 지금 볼 필요가 없는 책을 들추며 중얼거린다거나, 의자를 끄떡 끄덕거리다가 우당탕 넘어지는 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이었고, 책상에 빈 틈 없이 낙서를 해놓기도 하는 등,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중이 떨어지니 성적도 좋지 않고,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좀 이상한 아이’로 통하고 누구도 그룹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트로이의 검사 결과를 보고는 그 아이의 의자를 치우고 책상에 짐볼을 넣어주었다.
트로이는 짐볼 위에서 조용히 통통 튀며 한 번도 일어서지 않고 수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쉽지 않아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일차적인 문제였는데, 짐볼이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물론 모든 산만한 아이들에게 짐볼이 답은 아닐 수도 있지만, 학교는 아이를 위해 맞는 방법을 찾을때까지 노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칫하면 문제아가 될법한 아이도 환경을 바꿔주니 평범한 아이가 되는 믿기지 않는 교육환경. 어쩌면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문제아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