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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Oct 04. 2023

첫 번째 상담 - 문제는 퇴사가 아니라 나야

상담이 시작되었다.


최근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이야기했다.


몇 주 전 아이가 아파 휴가를 신청하는데 상사의 대답이


'남아있는 A만 죽어나네.'였다.(아이가 아픈 데에 대한 여러 위로를 해주셨지만 기억에 남는 건 이 말뿐.)



느닷없이 꽂힌 말이 꽤나 오래 남았다.(그렇다 나는 예민하다.)




A 죽으라고 휴가 신청을 내는 게 아닌데,


단지 아이가 아파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뿐인데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일과 육아 사이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다.


남편이 휴가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가 아플 땐 내가 독박이다. 왜 내가 독박이어야 하나.


가뜩이나 일도 힘든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느낌.


엄마가 도와주러 오긴 했지만 남편의 도움이 더 절실했고


가족이라서 어쩌면 더 잘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안된다고 하는 아빠의 그 단호한 태도가 서운함으로 남았다.



'일과 육아를 같이 하기 힘들어요. 저 혼자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게 불합리하고 억울해요.' 



누가 일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다 내가 선택한 일이면서 징징댔다. 어느 누구는 복에 겨운 징징 거림이라 할 테지. 하지만 나도 힘들었다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설토하는 중간중간



상담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했는가 보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더 궁금해하셨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닌 건가?'




머쓱함과 함께 더 이상 욕할 사람도 없고 힘든 일도 다 말해버려서 할 말이 사라지자


오래전부터 간직했던,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어쩌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이건 제가 지금 힘든 것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인데요...'



상담 선생님이 뭐든 말해보라 하셔서 용기를 냈다.



순간순간 울컥 쏟아져 나온 눈물을 참아가며 꺼내 놓은 이야기들을 모두 들으시고는


지금 힘든 것과 방금 말한 것들이 많이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도 몰랐던 연관성을 짚어주자


왜 그토록 상사가 싫었는지. 왜 하필 그 상사와 갈등이 심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럼 이건 직업의 문제가 아니잖아? '


힘든 이유를 직업 탓으로 돌렸는데 그게 문제라기보다


어떤 특정 상황에 부딪혔을 때 취약한 부분이 드러난다고 했다.




정말이지 신기했던 건


말하면서 울컥, 감정이 격해졌던 그 부분들은 채 아물지 못한 상처여서 조금만 닿아도 아파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상처에 연고를 잘 발라주고


상사와 있는 동안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보자고 하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원하는 일을 모색하는 건 괜찮다고도 하셨다.




날아오는 화살들은 어딜 가도 피할 수 없을 텐데


앞으로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퇴사에 대한 불타는 마음은 찬물 끼얹듯 사라졌다.







단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는 것,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상사와의 관계가 어쩌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과 동일시되어서


힘들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상담은 혼자만의 생각에 질주하는 것을 제동 걸어주는 과속방지턱 같은 존재다.'라고 한 친구의 말이 정말 맞았다.



시속 180km로 내달리던 마음이 비로소 제 속도를 찾아갔다.




다음 상담까지 2주가 남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K-장녀로서 헤쳐나가야 할 것,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극에 달했다가 합격과 동시에 잊혀간

나의 예민함에 대해 파고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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