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젬병이다.
원체 먹는 것에 흥미가 없기도 하다.
기껏 해서 만들어 놓아도 음식은 남기 마련이다.
요리에 잠깐 소홀하면 식재료가 썩어 나가는 것은 또 어떤가.
상해서 버리는 재료들이 왜 그렇게 싫던지.
돈을 뭉텅이로 버리는 느낌이다.
귀찮아하는 버릇이 심해서 장보기부터 재료 손질까지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딱 질색이다.
이렇게까지 요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유아 반찬'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주르륵 뜨는 글들을 마주한다.
인스타 속 사진에는 이쁜 식판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골고루 갖춘
반찬들을 매일 다르게 차려놓았다.
'밥은 저렇게 해야 아이들이 잘 먹는구나.'
'나는 곧 죽어도 저렇게 못 할 것 같은데.'라며 지레 요리를 포기했더랬다.
워킹맘이니 핑계도 좋았다.
자주 시켜 먹거나 간편한 레토르트 같은 것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였을까.
지 어미 입맛을 닮아 입도 짧은 아이는 자주 아팠다.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시댁에 갈 때뿐이었다.
이제 휴직도 했겠다, 요리하지 않을 명분은 사라졌다.
계획성이 없는 엄마라 그때그때 해줄 반찬이 있으려면
재료가 충분해야 했다.
흔하게 쓰이는 재료인 당근과 양배추, 애호박 등을 채 썰어둔다.
잔치국수용 고명, 볶음밥, 불고기에 들어갈 채소가 미리 준비되어 있으니
요리가 한결 쉽고 편해졌다.
보여주기식 요리도 내려놓았다.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주면 잘 먹겠지 싶어서
뭐가 먹고 싶은지 자주 물어보았다.
먹고 싶어 하기도 했고 실제로도 잘 먹는 음식들을 살펴보면
미역국, 계란말이, 멸치볶음 이런 것들이었다.
어느 날은 프랜차이즈 죽 전문점에서 먹을 수 있는 장조림을 아이가 너무 좋아하길래
잔뜩 사두었다. 구운 소고기가 질기거나 표면이 거칠어서 싫어하는 아이에게
소고기를 먹일 수 있는 효자 반찬이다.
맨밥에 물 말아서 장조림 얹어주면 아침에도 한 그릇 뚝딱이다.
밥에 물을 왜 마냐고?
밥 자체의 푸석함이 싫은 모양인지 국 없이는 밥을 먹기 싫단다.
무슨 국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매일 미역국이란다.
원하는 거나 원 없이 해주자 싶었다.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냉동해 두니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미역국이 조금 질릴라치면 계란 살살 풀어 애호박, 당근 조금 썰어 넣고 뚝딱.
어묵국은 비 오는 여름이나 추운 날의 특식이다.
내 입맛이 까다로워 한번 끼니에 올라왔던 음식은 그날 두 번 먹기 싫은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나 보다.
누구나 다 아는 국민 반찬만 있으면 밥 잘 먹는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요리가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