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는 물건과 가구를 정리하고 처분하는 과정을 지나서 천천히 내 삶의 각 영역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진정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쓰는 것.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도 또한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거나 없애서 그 시간과 정성을 정말 중요한 이들에게 쏟고 함께 하는 것일 것이다.
원래 인간관계의 망이 넓은 편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아도 언제나 마음 맞고 이야기가 통하는 몇몇 친구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갔었고 또래들 사이에서 의견을 주도하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그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도 가급적 부담이 가지 않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중, 고등학교시절까지는 시간을 정해서 만나고 도서관 등을 같이 다니고 손 편지를 나누며 서로의 생일을 꼭 챙기는 등 우정의 외양들도 채워가려 노력했지만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고 서로의 활동 영역이 더 이상 겹쳐지지 않으면서 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멀어진 관계를 좁히려 들지 않았더니 중년에 접어든 지금. 자연스럽게 남는 친구와 소원해진 관계가 구분되었다.
이제 남은 친구와는 몇 년 만에 서로의 안부를 들어도 편안한 사이이다.
"잘 지내?"
라는 짧은 인사에 짧은 답변만으로도 지난 시간에 녹아있는 친구의 희로애락과 고군분투, 소소한 행복 등이 느껴져서 짠해진다.
원체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나인지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미니멀리즘을 알기 전부터 자연스레 정리가 되어 크게 의미 없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한때 참 친했으나 이제는 연락이 뜸해져서 누군가를 통해서야 간간이 안부를 듣는 사이들도 있다.
세심히 챙기고 돌보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이 컸으니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어쩌면 서로에게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금이 꼭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방금 확인해 보니 휴대폰 연락처 개수가 15개이다. 카톡은 어떤가 봤더니 떠 있는 대화창 중에서 단순 안내 및 광고와 업무상 필요로 인한 대화를 제외하면 가족을 포함해도 5개 내외인 듯하다.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별문제 없이 하고 있는 한 성인의 인간관계 치고는 너무나 빈약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더 반드시 챙겨야 하는 관계를 놓치고 있나 싶어서 살펴보니 지금 내게 중요한 이들의 이름은 다 들어있는 듯하다.
다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해야지 하면서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더 연락이 쉬이 되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녀는 아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 테고 언젠가 내가 연락을 하면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는 안도의 마음도 있다.
어쩌면 나는 기질적으로 타인에게 좀 무관심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홀가분하고 불필요한 말들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풍성한 인간관계가 주는 즐거움과 생명력을 알기에 이런 나의 소극적인 모습이 좀 마음이 쓰일 때도 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섭섭하게 한 적들도 있어서 미안하다. 나에게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던 나다운 무심함이 살가운 그들에게는 낯설고 섭섭했으리라.
앞으로도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기도 할 것이다.
좀 더 세심한 모습을 갖춰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냥 나다울 때가 가장 나을 것 같다.
상대가 좀 섭섭할지라도
그냥 진솔하고 정직한 내 모습이
시간이 흘러 이미 멀어진 짧은 관계, 시절 인연을 떠올릴 때
막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도 그땐 그랬었지... 하고 웃고 넘길 담백함은 안겨주지 않을까.
하긴 그때 그랬지... 하고 떠올릴 필요는 뭐가 있겠는가.
시절인연. 말 그대로 그 시절이 지났으니 그냥 가물가물 잊히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