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를 통해서 한 미국인이 미국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 들어 나누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의 생산 및 소비 구조, 무엇이든 큰 것을 선호하는 소비 심리, 주로 외곽에 거주지가 있어 집에 물건을 쟁여놓고 지내는 거주 문화 등등, 미국인으로서 본인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실제로 부딪혔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는 문화적 부분들을 차근차근히 잘 짚어주어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문득 한국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미국문화와 유사한 면이 많고 또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라 위에 든 소비문화 등은 거의 유사할 것 같고 최근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국만의 독특하면서 강한 문화적 배경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체면문화이다.
누가 무언가를 준다고 하면 거절을 잘 못한다. 과도한 예의 탓이다.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나에게 대한다고 여겨질 때 나 자신에게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가 주체가 되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하면 상대에게 미안하고 혹은 더 나아가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은 염려를 먼저 하고 상대가 기분이 언짢아하지 않을지를 먼저 고민한다.
그리고 " 아니오 필요 없습니다."라는 거절의 말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니 입 밖으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즉,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주체가 되고 그와 맺은 사회적 관계가 내가 나 자신과 맺는 1차적 관계보다 더 중요해는 것이다.
최근 추석연휴를 맞아 시댁의 친척집을 방문하여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 옷과 신발 장난감등이 필요하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키우시는 사촌댁에서 몇 박스에 달하는 옷, 신발, 장난감들을 준비해서 차에 싣고 오신 것이다.
시댁 친척분들이 다 계신 자리에서 그중 정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고르고 "이것, 저것만 들고 가겠습니다."라고 어찌 말을 하나.
그저 차 트렁크를 열고 박스를 옮겨 실은 후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 옷이 필요했어요. 큰아이가 요새 얼마나 공룡을 좋아하는지..."라는 인사를 드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먼 여행의 여독을 풀지도 못하고, 바로 정리에 돌입했다. 박스부피가 너무 크고 먼지도 나서 안으로 들일 수 없어 현관에 두고 방을 오가며 정리에 정리를 거듭했다.
깨끗하고 브랜드도 좋은 옷들이 대부분이었고 장난감도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실제 지금 입히면 딱 좋을 옷들도 있어서 감사하게 옷장으로 새로 들인 것들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며칠에 걸쳐서 정리를 거듭한 후 처음 받은 물건의 3/4 정도는 그대로 다시 박스에 담겨 현재 기증처를 기다리며 우리 현관 앞에 아직도 놓여있다. 들고 날 때마다 부피 큰 박스들을 피해 다녀야 하니 요새 좀 귀찮다.
왜 받아왔을까... 아이들에게 입힐 옷 서너 벌을 얻기 위해 나는 이제 며칠에 걸쳐서 남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처리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원 소유자였던 분께서 아이가 크고 나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그것들을 정리하시는 게 맞을터인데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신발은 한 박스 가득 받았으나 사이즈가 하나도 안 맞아 모두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옮기고 장난감을 분류하고 옷을 분류하여 다시 박스와 종이백안에 넣고 받아줄 기증처를 찾아 전화를 돌리고 그 기증처에서 요구하는 규격대로 재포장을 해야 하고 택배 기사분과 시간약속을 해야 하고. 이 모든 수고에는 나의 시간이 든다. 쉴 수 있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거절을 못해서이다. 왜 못했는가? 위에서 말한 대로 그놈의 체면이 예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나의 필요나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이 더 중요하고 상대와 어색해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고 상대의 선의에 감사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 아니요" "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와 같은 상대와 차이가 나는 말을 하는 것을 안 좋다고 배웠다. 물론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실천할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럼에도 가족사이에서 친척들 사이이세 그리고 더 큰 사회 안에서 암묵적으로 상대와 의견이 다른 것을 불편해하는 분위기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생각과 판단이 엄연히 다른데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라고 배웠고 이제 나는 그게 익숙하다. 반대의견을 말해놓고 두고두고 마음 불편해하는 소심쟁이가 되어버렸다.
다른 생각, 의견을 상대에게 정직하면서도 교양 있게 표현하는 방법은 더 못 배웠다.
표현자체를 터부시 하는데 그것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법을 어찌 제대로 배웠겠는가.
그러니 참다 참다 싸운다.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나는 싫다고.
처음부터 차분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표현했더라면 오해도 불만도 없었을 텐데.
체면 차리다, 나보다 남 눈치를 더 보다가 결국에는 터져서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온 물건들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비워냈는가.
그런데 또 받아온 것이다.
다시는 안 받는다고. 정말 필요하면 차라리 내 돈 주고 중고마트에 가서 사겠다고
다짐도 했건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나는 다시 작아져 버린다.
어렵게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 한 번으로 다 완성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다시 차근차근히 나가야겠다.
그리고 혼자서라도 이제 연습해보려 한다.
자. 눈을 상대와 마주치고 과도하게 미안해하지 말고
그저 자연스럽게 정직하게 단정한 태도로 담백하게 천천히 말해보자.
"감사하지만 이 물건은 지금 저희한테는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