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메이크업 내 얼굴.
우리 집 화장실 캐비닛 안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이 하나 있다. 일반 종이컵 크기정도인데 그 안에는 미니 사이즈 비비크림 하나와 머리끈 및 머리핀 그리고 손톱깎이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게 우리 집에 있는 나의 메이크업 도구 전부이다. 이마저도 요새는 쓰지 않는다. 혹시나 행사가 있을 때 필요할까 해서 놔두고 있다.
우리 시절에는 학생의 메이크업은 철저히 교칙에 위배되었고 양말색깔과 머리 길이 및 머리에 꽂는 작은 핀조차 교문 앞에서 지도를 받았던 때이다. 그래도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작은 거울 앞에 모여 머리를 매만지고 팩트를 꺼내어 얼굴을 다듬는 친구들도 적잖이 있었다. 사고의 유연성이 더욱 떨어졌던 그때의 나는 그 친구들을 다른 세상 속의 사람인양 지나쳤고 그다지 화장이나 꾸미기에 대한 열망이 크지는 않았다. 하나의 공식처럼 화장은 어른이 되면, 즉 대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리고 대학 1학년을 기점으로 나의 얼굴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고 그때부터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화장을 하지 않고 밖을 나서 본적은 거의 없다. 새벽에 일어나 시외버스를 타고 대학 1교시 수업을 듣던 날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갔다. 그때 허겁지겁 강의실로 들어온 한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너무 부지런하다고 놀라워했다.
나는 화장을 즐겼다. 광대와 강한 턱선이 늘 불만이었다. 갸름하지 못하고 큰 얼굴은 늘 가리고 싶은 나의 약점이었다.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해 준다는 쉐이드를 색깔별로 사용했다. 광대를 갸름하게 바꿔 준다는 쉐도우를 연지곤지 바르듯 늘 발라주었다. T존에는 광택을 주고 U존은 어둡게 해야 얼굴이 입체감 있게 살아난다길래 반짝거리는 펄을 펴 바르고 얼굴 아래는 턱선을 따라서 음영을 주면서 얼굴을 캔버스 삼아 매일 아침 한 편의 그림을 그렸다.
크고 강해 보이는 얼굴을 덜 부각하기 위해 나름 자신 있어했던 눈을 살리기로 했다. 색색깔의 쉐도우를 펼쳐두고 베이스 컬러 다음 음영 다음 하이라이트 순으로 눈 주변에 화려한 그림을 그렸고 언제나 짙은 아이라이너를 발라서 실제 눈을 1.5배로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짜 속눈썹도 당연히 시도했지만 중간에 떨어져서 난감해지는 바람에 접었고 아이라이너 문신은 한번 도전했지만 아파서 두 번은 하지 못했고 대신 워터프루프라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아이라이너로 더욱 정성껏 눈 위에 선을 그어주었다.
립스틱도 다양한 색깔을 구비해 두고 기분 따라, 날씨 따라 바꿔 바르고 그 위에 반짝거리는 립글로스를 더해야 했기에 화장을 마치고 나면 늘 입술은 번득이고 있었다.
물론 이 과정 이전에 4~5종에 이르는 기초화장품으로 얼굴에 영양을 넣어주고 2~3종에 이르는 베이스 제품으로 얼굴을 무결점에 가까운 흰 도화지로 만들어줘야 함은 당연하다. 얼굴이 희고 깨끗할수록 컬러 화장이 살아나니까.
그렇게 대학생 때도 직장 출근할 때도 30여분이 넘게 화장대 앞에서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입은 얼굴이 나였기에 그제야 밖을 나갈 수 있었다.
돌아오면 5~6겹의 화장품을 입고 있던 얼굴을 벗겨낼려니 다시 오일, 클렌징크림, 포인트 화장품 클렌징, 마지막 폼클렌저까지 순서마다 한 겹 씩 화장을 제거해 나갔다.
아... 쓰다 보니 얼마나 고단하고 긴 과정이었는지. 들인 돈과 시간은 또 얼마나 많고 길었는지...
그 모든 화장품이 내 피부 모공을 통과해 내 몸속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즐기던 화장이 나중에는 필수가 되었고 그 화장으로 내 얼굴을 덮을 때에야 자신감이 생겼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나는 어떻게 화장을 안 하게 되었을까?
일단 몇몇 일본 피부과 의사들의 책이 계기가 되었다.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 등과 같은 책을 접하게 되면서 과도한 화장품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성이라는 막연한 원인이 전부였던 피부 간지러움도 큰 이유였다. 직장에서 야근이 잦았던 때에는 일 년에 꼭 한 번은 피부과에 들어서 지루성 피부염 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다른 부위에 비해 얼굴이 덜하긴 했지만 간지러움은 몇 년간 늘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실제 실천으로 이끌어 준 것은 미니멀 라이프였다. 나의 외양보다는 나의 몸과 마음과 일상 전반의 건강에 좀 더 무게를 싣다 보니 처음에는 옷을 줄이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신발과 가방을 줄이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각종 몸에 걸치는 소품을 줄이게 되었다. 한마디로 꾸미지 않는 심심하고 수수한 차림으로 점점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화장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옷은 정장 바지에 간단한 셔츠 그리고 걷기에 딱 맞는 운동화 차림인데 얼굴은 풀메이크업을 하자니 어색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화장을 줄여가게 되었다. 가장 겉껍질부터 차례대로 줄여나갔다. 컬러메이크업이 줄어들고 베이스 제품의 개수가 줄어들고 기초화장품도 아이들과 함께 쓰는 유아용 로션하나로 줄어들었다. 마지막까지 같이 갔던 것은 선블록 기능성의 비비크림과 색깔이 도는 립밤이었다. 중년에 접어들어 기미와 칙칙해진 얼굴톤을 잡아줄 비비크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앵두빛까지는 아니어도 아파 보이지는 않아야겠기에 붉은빛이 감도는 립밤도 필수였다. 그랬는데 이마저도 놓은 지가 두어 달이 되어간다.
그냥 안 해보았다. 깨끗이 씻고 머리를 단정히 빗은 후 출근을 했다. 직장에서는 아무도 내가 노메이크업인지 알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퇴근을 하니 간단하게 따뜻한 물에 물세안만으로 하루치 피지와 먼지를 지워낼 수 있었다.
신선한 발견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초반에는 노메이크업의 생얼굴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내가 더 힘들었다.
거울 속에 떠오르는 한 여자의 얼굴. 화장기는 전혀 없고 군데군데 기미가 보이고 콧잔등에 모공도 두드러져 보이고 무엇보다 뽀얀 것과는 거리가 먼 균일하지 못한 얼굴빛. 솔직히 화장했던 때와 비교해 예쁘지 않았다.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때로는 덜 정돈되어 보이기도 했다. 비비크림에 립밤이라도 다시 발라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며칠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옷과 머리를 단정히 정돈하고 깨끗이 차려입는데 좀 더 노력했다. 그리고 모자와 양산 겸 우산으로 햇빛을 피했다.
이제 노메이크업의 내 얼굴에 나는 조금씩 적응해 간다. 편하다. 말해 무엇하랴. 화장하고 지우고 그 시간을 다른 활동에 쓸 수 있다. 사실 피곤한 몸을 빨리 누이고 빨리 잘 수 있어서 최고다. 그리고 직장 일과 중 중간중간 화장을 수정하지 않아서 좋다. 더러워지는 화장 퍼프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각종 화학물질이 피부를 통해 내 몸에 들어와 어딘가에 쌓인다는 불안한 사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서 좋다. 맨얼굴로 우리 아들들에게 마음껏 뽀뽀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새 화장품 사는데 굳는 돈이 늘어서 좋다.
편하고 자유롭다. 거울 속에 그냥 내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고 그 모습이 점점 편안해 보여서 좋다. 그냥 내 얼굴. 그냥 나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