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시작하면서 나의 헤어스타일은 한결같았다. 포니테일. 머리끈으로 한 번에 묶기만 하면 되니 제일 간단했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함께 하다 보면 무엇 하나 일단 걸리적거리는 것은 다 치우게 된다. 그게 작은 머리카락 한올이라 할지라도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다 보면 가끔 낙타등에 잔뜩 올려놓은 짐덩이 위에 바늘하나를 더 올려놓은 듯 크게 느껴질 만큼 피곤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바짝 당겨서 탱탱한 머리끈으로 묶어버리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었다.
그러다 복직을 하고 염색을 하고 머리를 자르고 나니 이후 출근 때마다 드라이와 간단하게나마 스타일링을 계속해야 했다. 그렇다고 결혼 전처럼 시간을 많이 들일 수도 없으니 후딱 겉에만 아이롱기로 펴고 헤어오일을 발라서 모양을 잡아주긴 했지만 당연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스스 해지는 곱슬머리와 무너지는 스타일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시간이 아까웠고 매일 아침의 머리 스타일링은 피곤하게 느껴졌다.
먼저 염색을 포기했다. 기본 세 시간씩 들여서 기껏 염색을 해도 한 달 즈음이면 머리카락은 흰색과 염색머리로 나뉘기 시작했고 주로 검은색, 새치, 염색한 색깔이 뒤섞여 염색 초기의 산뜻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용실에 앉아서 염색을 받는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다음으로 스타일링을 포기했다. 천연 곱슬머리인 데다 숱도 많은 편이라 겉 부분만 건성으로 아이롱의 열기로 펴준다 해도 금방 부스스해지는데 들인 노력이 아까웠다. 스타일링 대신에 다시 바짝 묶어 다녔다.
그렇게 네 계절을 보냈다. 그리고 머리를 쇼트커트 스타일로 잘랐다. 처음에는 단발로 자를까 하고 미용실을 들렀다. 미용실 사장님도 쇼트커트 스타일은 얼굴이 작고 갸름한 분이 어울린다고 하시며 단발을 더 추천하셨다. 내 얼굴이 좀 크고 광대도 솟은 편이라 지레 쇼트커트 스타일은 아닌가 보다 하고 접고 묵묵히 머리를 자르는데 웬걸. 그냥 아주 짧게 잘라보고 싶은 거다. 사장님이 거의 다 이발을 마치시고 마지막 드라이를 해주시는데 그만 그 열망이 풍선처럼 커져서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그냥 저 쇼트커트로 잘라주시면 안 될까요? "
이렇게 마음이 강하게 원할 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강렬하게 원하는 이런 감정은 그 순간이 지나면 시들해져서 다음번에 다시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다. 나의 감정을 그대로 존중해 주기로 했다. 큰 얼굴에 안 어울리면 또 어떤가 싶었다. 그냥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자 싶었다.
단골미용실이라 사장님은 우려하시면서도 다시 가위를 집어드셨다.
"진짜 괜찮겠어요? 정말 짧게 잘라도 괜찮겠어요?"
머리 자라는 게 뭐라고... 나는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사실 단순한 이발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리고 뭉텅뭉텅 머리카락은 잘려나가고 어느새 목덜미와 귀언저리가 선득선득 서늘해졌다.
염색이나 펌보다 커트는 얼마나 빠르고 좋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울 속에 나는 짧은 쇼트커트를 하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사장님도 웃어주셨다. 자르면서 나름 걱정이 되셨나 보다.
이제 따로 드라이어기를 쓰지 않아도 수건으로 몇 차례 훔쳐주고 빗으로 빗고 나가면 바람결에 머리카락은 자연스레 마른다. 머리가 짧으니 비누조차 쓰지 않고 그냥 물로만 머리를 감아도 괜찮다. 따뜻한 물에 두피를 시원하게 마사지하면서 씻어주고 나면 끝. 긴 머리일 때는 늘 곱슬머리가 불만이었다. 맑은 날은 부스스했고 비가 오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늘 염색을 하고 머리카락을 일자로 펴는 펌을 해야 했다. 내 머리카락은 천연 곱슬인데 반평생 가까이 뜨거운 열기와 펌약품으로 가짜 머리카락을 만들며 살아왔다. 이 곱슬머리가 쇼커트 머리에서는 큰 장점이 된다. 자칫 밖으로 뻗치거나 아니면 너무 붙어버려서 빈약해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자연스럽게 부피감을 만들어주고 자연스럽게 끝부분에 웨이브가 생겨서 뻗치는 일도 없다.
이제 내 곱슬머리가 편안해졌다. 늘 머리끈에 갇혀서 두피 끝까지 긴장되어 묶여있지 않아도 된다. 염색과 펌의 융단폭격에 신음하지 않아도 된다. 샴푸도 헤어제품도 비누조차 쓰지 않고 물로만 씻어주고 자연의 바람으로 말리는 내 스타일링 덕에 나의 곱슬머리는 몇십 년 만에 가장 편안한 숨을 쉬고 있다.
덩달아 나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