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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11. 2023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도착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비행시간이 2시간 길어졌다고 했는데, 그 2시간이 얼마나 길어진 시간인지 비행기에 구겨져 앉아 있으며 새삼 느꼈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마지막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만 3년 만이라 오랜 비행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예상은 했지만, 14시간은 정말 길고도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시간이 안 가는 방법은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행기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다 지쳐 결국 가만히 비행 항로를 켜고 시계만 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다.


런던 상공에서 서서히 내려가는 비행기는 그야말로 감격이었다. 런던 땅이 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제 이 비행기에서 내려 걸을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기쁨이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러 나가 기다리는데, 벨트에서 우리 짐이 나오지 않자 초조한 마음이 일었다. 캐리어가 보이지 않던 그 몇 분간 캐리어 분실이 되었으면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며 불안해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넷의 표정이 모두 어두웠는데, 아마도 여행을 준비하며 각종의 사고를 들었던 탓이리라. 캐리어는 무사히 나왔는데도 우리의 얼굴은 피로와 걱정에 버무려져 마냥 밝아지지는 않았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의 이방인이 되는 기분. 이 기분을 느끼려 이 먼 비행을 하고 왔지만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묘한 책임감에 들뜨고 설렘보다는 걱정과 불안이 더 컸던 공항 입국장이었다.


히드로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은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빠른 것은 히드로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는 것이지만, 우리가 내린 터미널에서는 다른 터미널로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서 얘는 탈락했다. 그다음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인데, 내가 예약한 숙소는 지하철 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인데 처음 내리는 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두 아이를 데리고 호텔에 가는 것을 잠시 상상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얘도 탈락했다.

가장 쉽고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은 택시인데, 우버와 볼트 같은 차량 공유 시스템을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하였지만, 택시 승강장보다 좀 더 걸어가야 하고 택시보다는 좀 더 기다려야 해서,

가장 쉽고 가장 비싼 블랙캡을 이용했다. 역시 비쌌다. 가장 편한 것을 선택했으니 마음 편하게 택시의 편안함을 누렸어야 했는데, 올라가는 요금에 동공지진이 나는 소시민인걸 어쩌겠나. 마지막엔 구글맵보다 무려 20분을 더 왔음에도 자연스레 팁을 요구하는 기사의 모습에 약간 속이 상했지만, 여행 첫날 이런 것에 마음 쓰지 않기로 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런던은 물가가 비싸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정경대 기숙사를 예약했는데, 기숙사라 호텔처럼 좋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정말 기숙사 같았다. 욕실은 작고 냉장고조차 없었기에 처음엔 약간 실망의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는 넓고 책상이 두 개나 있어 매일 일기를 써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괜찮았다. (물론 들어서자마자 약간 실망스러워, 얘들아 파리는 호텔이야…. 라며 말해버린 나였다.)

그래도 런던에 있을 동안은 집이 될 공간이니 마음을 붙여보기로 하고 짐을 정리하는데, 둘째가 피곤했는지 그냥 이불 속에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애들의 긴장도 눈에 들어왔다. 어쩌지. 이제 시작인데. 나는 P라고 너무 계획을 허술하게 짠 것은 아닌가. 너무 대책이 없었나.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고민이 고개를 들었고 나 역시 답도 대책도 마땅하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고 간단히 씻은 후에, 내 침대에 누워있는데 (기숙사라 1인 1 침대였다) 문득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캠핑을 선호하던 아빠 덕에 어린 시절 캠핑을 자주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딱히 사설 캠핑장 같은 곳이 있던 때도 아니라 그냥 바닷가 해수욕장 등지에 텐트를 치고 코펠로 밥 해 먹는 그런 노지 캠핑이었다. 언젠가 늦은 밤 강원도의 어느 해수욕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던 엄마 아빠가 기억났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뽈대를 펴고 텐트를 치던 엄마 아빠도 사실은 두려웠겠지. 파도 소리에 잠을 못 이루며 괜히 왔나.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겠지. 그래도 그 밤에 그 바다까지 온 것은 우리 애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한 엄마 아빠의 노력과 사랑이었음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걱정과 번민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런던 새벽 4시이다. 시차 적응은 성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씻고 새벽 산책을 나가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일찍 깨도 새벽에 산책을 나가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여기는 런던이니까. 템즈강변을 걸으며 런던 무드를 좀 느끼면, 어제의 쓰린 택시비도, 작은 기숙사 방도 기쁘게 느껴질 것 같다. 어제 들어오는 길에 샀던 납작 복숭아를 채 먹지 못하고 잠들었던 작은 아이가 새벽부터 복숭아를 먹으며, 이게 왜 유명한지 알 것 같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아이의 웃음을 보니 용기가 났다. 이제 나가서 걸어 다녀보고 왜 유명한지 함께 탐험해 봐야겠지. 그렇게 여정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새벽 산책에 나가보니, 세인트폴대성당이 바로 앞이였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 가족은 성당을 보자마자, 앞으로의 여정에 더욱 용기를 얻게 되었다.
시장도 가까워서, 매일 매일 납작 복숭아를 1키로씩 사다 먹었다. 껍질까지 먹어도 맛있었던 복숭아. 지금 이순간까지도 제일 그리운 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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