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슬픔과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켜켜이 느끼던 밤.
어제 서울엔 비가 많이 내렸다. 이번 연휴에만 서울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한 번은 가족들과의 나들이었지만 두 번은 모두 장례식장이었다. 아무리 긴 연휴라도 두 번의 갑작스러운 서울 방문은 일정에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직장 동료의 시모상이었고 한 번은 중학교 친구의 어머니 상이었다. 당연히 애사에는 참석해야 하지만 중학교 친구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을 때는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연휴 중간에 직장 동료의 애사를 위해 서울 장례식장을 다녀온 터였다. 그렇게 서울에 다녀온 지 하루 만에 다른 부고를 받으니 일정에 부담이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출발해야 할지, 친구를 위로해 주러 가긴 해야 할 텐데 애도의 마음을 자꾸 미루게 되었다. 그런 애도를 미루고 아무 일 없는 듯 남편과 그냥 일상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을 챙겼지만 마음 한편이 내내 무거웠다. 종일 올라가는 기차와 내려가는 기차를 검색했다가 아무래도 또 올라가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기차 어플을 켜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저녁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기차와 밤늦은 시간에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예약했다.
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연락을 잘 못하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는 서로의 집을 오가던 사이였다. 중3 때 친해졌던 친구여서 서로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 함께 등교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때 나는 친구의 어머니를 '아줌마'라고 부르며 안에 친구가 있는지 등을 물었던 것 같다. 사실 오래되어 아줌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네 집 마당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아줌마의 잔소리에 친구가 뛰어나오는 장면들은 단편적으로 생각난다.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장소와 시간이 있었었다. 그런 아줌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을 미루고 있었다니 내가 야멸차게만 느껴졌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 서울을 오가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도 어렵지 않고 또 기차도 자주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망설였던 것은 이미 연휴 중에 자꾸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던 게 마음이 무거웠던 걸까. 아니면 마음 한편에 가족과의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걸까. 부고 문자를 받자마자 당연히 서울행 열차를 예매하지 못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계속 미안했다. 서울에 또 다녀와야 한다는 나의 말에 친구와의 관계를 모르는 아이들은 지나가는 말로 함께 축구 보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국가 대표팀과 브라질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라 며칠 전부터 함께 축구를 보기로 했던 우리였다. 축구 경기를 못 보는 것은 내게는 큰 아쉬움은 아니었지만 아들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때이기에 그런 시간을 놓치는 아쉬움은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며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생각나 못내 미안하기도 해서 기차 안에서 마음을 담은 긴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은 나간 엄마를 금세 잊고 축구 경기를 응원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면 마음을 담은 그 카톡에 하트만 누르고 이후엔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미리 조문을 갔던 친구가 우산을 꼭 챙겨 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작은 우산이 다 막을 수 없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뚫고 병원에 들어서는데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친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보내야 했던 황망해하는 친구를 보고 나서야 애도를 미루려 했던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무게감 있게 미안했다. 그래서 더 눈물이 펑펑 났나 보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친구와는 짧게 인사하고 돌아와야 했지만 친구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시간 동안 잠시라도 같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늦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낯선 곳을 가는 나를 걱정하는 남편을 위해 장소가 바뀔 때마다 카톡을 보냈다. 이를테면 이제 기차를 탔다고, 또 병원에 도착했다는 카톡을 보내면 남편은 아이들과 축구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애도의 걸음걸음과 일상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려나. 친구의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오며 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당연하게 돌아왔고 가족을 잃은 친구의 슬픔을 마음 한편에 넣어 둔 채 돌아와서는 나의 가족들로 인한 일상의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싶기도 또 오래 기억하고 싶기도 했던 밤이었다.
상실의 슬픔은 결국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친구 역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다른 가족의 돌봄으로 채울 것이다. 나 역시 슬퍼하는 친구를 보고 온 무거운 마음을 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주던 가족들로 마음 한편에 넣어둘 수 있었다. 서울역에서 파는 과일 찹쌀떡을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여러 가지 맛의 떡을 골라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즐겁게 먹었다. 떡을 먹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다시 쌓여갈 평범한 일상들이 상실의 슬픔을 소복하게 덮어줄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날이었다. 끝으로 아줌마가 하늘에서 고통 없이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친구가 아픔을 딛고 일상의 기쁨으로 회복해 나가기를 기도했다.
(@대문 사진은 '장 미셸 바스키아 :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의 표제 전시작품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중 하나의 단어를 찾은 느낌이 드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