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N) 항불안제 1 tab PO
살아 숨 쉬어 이 세상을 헤엄쳐 나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불안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간다. 다만 그 불안의 모양과 색깔, 특히 크기와 정도가 각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또한 개개인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불안의 생김새는 변화무쌍한 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도 한낱 헤엄하는 인간이기에, 불안이라는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불안과 꽤나 가깝게 지내고 있다. 물론 불안장애로 분류될 만큼의 불안은 아닐지도 모른다. 불안장애 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종종 겪는 정신적인 어떠한 문제들을 주치의 교수님과 연구 선생님은 ‘불안’이라고 명명하시므로, 불안은 내가 알맞게 대처해야 할 존재임은 확실하다.
나에게 불안이란, 약속 없이 불쑥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느껴지는 존재이다. 때때로 나의 안온한 일상의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에, 불안이라는 돌덩어리가 느닷없이 떨어져 파도와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불안은 맑았던 생각을 흐리게 만들어 감정까지 곤두박질치도록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불안은 심장박동 수를 급격히 빠르게 만들며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끔 조종하기도 한다. 나의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뒤죽박죽 엉망진창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 불안.
이때 필요시 복용하는 약의 힘을 빌릴 수 있는데, 그 약은 바로 항불안제이다. 알프람 0.25mg 1정. 처음에는 이 약을 복용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 내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불안이 나를 에워싸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도 ‘필요시 약 통’을 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 “그냥 먹어보세요. 즉각적이지는 않아도 훨씬 나을 겁니다.”
별안간 또다시 나를 찾아온 불안이라는 손님.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기로는 내 손으로 이 삶을 비로소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수면 위로 올랐다. 죽음에 대한 갈망, 정말이지 내 입맛대로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이다. 그때 강렬한 갈망의 틈새를 비집고 울리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나는 ‘필요시 약 통’을 열어서 작고 하얀 조약돌 같은 알약 한 알을 꺼내어 집어삼켰다.(이 모든 과정은 -아마도- 슬로우 모션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생각과 감정과 몸의 요동이 찬찬하게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필요시 약을 복용하지 않던 날들에는 몇 곱절의 시간과 기운이 쓰이는 일이었다. 역시 우리 교수님은 명의임에 분명하다고(사실은 어느 의사라도, 불안 증상에는 항불안제를 처방하였겠지만!) 생각하며, 침착하게 가라앉은 정신과 육체를 일으켜 세워 앉도록 만들었다.
필요시 약은 분명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로 말이다. 물론! 오용과 남용은 금물이라는 것을 늘 유의하고 있다. 정말 위급한 순간에만 알프람에게 SOS 요청을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필요시 약이 필요하지 않은 무던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마치 닫혀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다루듯, 그만저만하면 부디 약 통을 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기억하기! 불안 증상이 극심할 때, 이 약을 복용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