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Double Income No Kids) : 맞벌이 무자녀 가정
나에게는 정신건강의 문제와 더불어 신체 건강의 문제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HBV(만성 B형 간염)이다. 나는 모체 감염으로 태어날 때부터 잠재적인 B형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 비활동성이던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수년간 항바이러스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로 간의 상태를 늘 주의 깊게 살펴보는 중이다. 필연적으로 몸과 마음의 의사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신세이다.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과 간을 돌봐주시는 전문의 선생님께서는 진료 시간 막바지에 입을 모아 질문하신다.
“혹시 임신 계획 있나요?”
매번 계획 여부를 확인하신 후, 임신 계획 6개월 전에 꼭 본인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이곤 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현재 복용 중인 양극성 장애와 만성 B형 간염의 약제들이 임산부에게는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 계획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약을 바꿔야만 하고, 그 약이 나에게 잘 맞는지도 확인하려면 적어도 6개월이라는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임신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 속상할 법도 하지만, 사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다. 나와 남편의 삶에 -적어도 당분간- 자식은 없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대화란, 험난한 이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나와 남편은 우리의 대화를 다소 즐거워하며, 또한 대화가 끊이지 않게끔 노력도 더해주는 편이다. 대화의 주제는 때로는 가벼워서 훨훨 날아 대화가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두워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결말이 빚어지기도 한다.
‘2세 계획’이라는 대화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정기적으로 중요 회의를 소집하여 열띤 토론을 펼치곤 한다. 만약에 아기를 낳게 되면 우리의 삶은 어떤 모양으로 변하게 될까? 우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일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까? 어떠한 준비를 해둬야 하는 걸까? 만약에 아기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키를 돌린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색깔들로 채워지게 될까?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와 남편은 작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매우 귀여워하고 나름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작은 사람이라 함은 꼬물거리는 신생아부터 놀이터를 휘젓고 다니는 어린이, 그리고 격정적인 사춘기를 지나는 중인 청소년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귀엽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내 곁에 품을 수는 없다. 나는 몸도 마음도 엄마가 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내 스스로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크고 작은 파도에 쉽사리 무너져내리는 모래로 지은 성처럼 그려진다.
“낳으면 어찌어찌 다 키우게 되더라.”
흔하게 들리는 말들.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겪어보지 못한 분야에 대해 맞고 틀리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저출산 시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이 들 정도로, 내 주변에는 정말 많은 수의 새 생명들이 탄생하여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 그 새 생명들을 품게 된 새엄마들과 새아빠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낳으면 어찌어찌 다 키우게 되더라.”
낳아봐, 정말(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예뻐.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 실제로 만나보면 새 생명들은 정말 귀여운 작은 사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이 서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중요한 정기 회의 결과는 이러하다. 나는 두 의사 선생님께 2세 계획의 시작을 (아직) 선포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순도 100% 딩크족으로 영영 살아가겠다는 다짐 또한 (아직) 하지 않는다. 딩크와 딩크가 아닌 삶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우리이다.
우리 부부는 오늘 밤에도 흥미진진한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따끈따끈한 치킨, 그리고 시원한 콜라와 함께! 그 결과의 나침반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함께 탄 배의 노를 여전히 힘차게 저어나갈 것이다. 우리 선택의 모양이 어떠하든지 부디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준으로 현재 나는 무직이다. 그렇다면 딩크(Double Income No Kids)가 아닌 싱크(Single Income No Kids)가 맞는 표현이겠으나, 최근 드문드문 돈을 벌고 있었기에 편의상 딩크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