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오르내리더라도 평안할 것
나는 쉽게 일희일비하는 성격 덕분에 종종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놀이 기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의미는 여러모로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들게끔 만든다.
일희일비 :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함. 또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일어남.
-표준 국어 대사전-
나의 성격은 후자의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하여 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편이다. 좋음과 좋지 않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들, 혹은 나의 생각, 감정, 상태, 느껴지는 그 모든 것들이 해당된다.
가령 단골 빵집 사장님이 슬쩍 챙겨주신 ‘사탕 두 알’로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 탑승하여 수직 상승했다가도, 빵을 많이 먹어서인지 부쩍 불어난 ‘체중계의 숫자들’을 발견하고는 가파른 경사로 하강하게 되는, 어찌 보면 꽤나 피곤한 성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치의 교수님께서 약을 조절하시는 것에도 일희일비가 적용된다. 조금은 힘들었던 날들이 드문드문 있었음을 외래 진료 시간에 고백하면, 교수님이 분별하시고는 약을 늘리기도 하신다. 또한 얼마간 문제없이 잘 지냈다고 판단하실 경우에는, 약이 감량되기도 한다. 약도 나처럼 오르내리곤 하는 것이다.
약이 늘거나 줄어드는 그 순간, 나는 롤러코스터의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약이 다시 늘어나서 낙심되고, 약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어 매우 신나는,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상황극. 이때 이런 나를 간파하고 있는 주치의 교수님과 연구 선생님의 불호령이 즉시 떨어진다. “일희일비 주의보, 어떤 상황이든 그러려니 넘길 것”. 약은 언제든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라고!
최근 별안간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휘감는 나날들을 보냈다. 외래 진료 시간에 이를 말씀드렸더니, 주치의 교수님께서 양극성 장애 치료제인 리튬의 용량을 소폭 올리셨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솔직해지자면 조금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 속상한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약이 점차 줄어들어 외래와 약,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나의 의식과 무의식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채 연구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 연구실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모니터로 약이 증량된 것을 확인하시고는 곧바로 ‘일희일비 주의보’를 내리셨다. 역시 연구 선생님은 귀신인가 봐! 선생님은 나의 양쪽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해 주셨다. 약이 늘어났으니 힘들었던 그 모든 것들이 차차 좋아질 것이라고, 그리고 잘 알고 있듯이 약은 언제든 또 감량될 수 있다고.
면담이 끝난 후 연구실을 나서며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또 잘 지내다 보면 약이 줄어들기도 할 거야. 그러니 하루하루 일상을 잘 쌓아보자! 다음 외래 날 “저요, 잘 지내다 왔어요!”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이야.
물론 알약의 개수가 곧바로 줄어들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러려니 생각하며, 나에게 꼭 알맞게 처방하신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것이 나의 최선일 것이다. 그건 내가 자신 있지! 나는 ‘잊지 않고 약 챙겨 먹기’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이니깐. 국가대표로 선발된 나는 오늘도 약을 거침없이 집어삼킨다. 이번에도 내 마음을 잘 부탁한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