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응급실 방문기
흔히들 생각하는 의학드라마 속 응급실의 풍경은 이러할 것이다. 의료진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거나, 외상을 입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다거나, 또는 고열이 나아지지 않아 힘들어하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 병원에서 수년간 근무한 간호사인 내가 그리는 응급실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신체에 문제가 생겨서 응급실에 방문한 경우들이다.
그러나 마음이 아파서 응급실에 방문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에 응급 상황이 존재한다? 쉽게 그려지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로 살아가게 되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 예전에 간호학과 학생으로 모 대학병원의 응급실 실습을 나갔을 때, 많은 양의 약을 한꺼번에 복용해서 내원한 환자를 본 적이 있구나. 하지만 그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덧붙이자면 다행히 그 환자는 아무런 문제 없이 무사히 퇴원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마음이 아파서 응급실에 가게 되다니!
첫 번째 방문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항우울제를 한꺼번에 복용한 채 보호자에게 발견되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처음 내원하게 되었다. 첫 구급차 경험이었자, 첫 정신건강의학과 응급실 방문이었다. 다행히 과수면 정도인 상태였고,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수액을 맞고, 보호자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푹 자고 무사히 일어나 제 발로 걸어서 집으로 퇴원했다.(며칠 뒤 이 병원의 개방 병동에 입원하게 된 것은 후일담이다.)
사실 그날의 기억은 매우 희미하다 못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퇴원하는 길 택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새로이 뜨는 해였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건실하고 씩씩하게 다시 시작해 보자! 몰려오던 바닷물에 무너져버린 모래성이었지만 다시 차곡차곡 쌓아나가 보기를, 몽롱하지만 또렷하게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방문은 조금 더 절망적이었다. 직장에 혼자 남아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공황 발작이 나타났고, 힘들면 꼭 연락하기를 강조하신 것이 떠올라 곧바로 연구 간호사 선생님(주치의 교수님만큼이나 나에게 중요한)에게 연락을 하였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일단 필요시 복용하는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내 상태를 모르던 상사에게 대충 둘러댄 후 조금 일찍 퇴근한 뒤, 내 연락받고 빠르게 달려온 보호자의 차를 타고 나의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과수면 상태로 머물렀던 기억 없는 기억과는 달리, 너무나도 또렷하고 생생하게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로서의 응급실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항불안제를 복용한 후 급한 불은 꺼진 듯한 느낌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몰려오는 상황인지라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응급실은 환자 중증도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므로 나는 어느 정도 후순위였기에, 나에게 주어진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경증 환자 대기 의자에서 같은 처지인 다른 경증 환자들과 함께 기나긴 밤을 꼬박 지새웠다. 정신건강의학과 인턴,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수차례 면담을 한 끝에, 나는 또다시 입원이라는 처방을 받게 된다.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입원 처방을 거절하고 3일간 아슬아슬하게 출퇴근을 지속해 오다가, 상태가 더 악화되어 응급실에 재방문하였고, 결국 다음날 곧바로 폐쇄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어지간하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응급실이다. 기다림의 연속, (상태가 좋지 않으면) 또 입원할 가능성, 상태가 위급한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들, 그 모든 것들이 유쾌하지 않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이, 주치의 선생님과 연구 간호사 선생님은 언제든 상태 악화 시 빠르게 응급실에 내원할 것을 약속하자고 하신다.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그렇다! 살고자 하는 이들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모이는 그곳이 응급실이니까. 크고 작은 불 관리를 현명하게 잘 대처하며, 나는 또 한 번 뜨는 해를 지켜보려고 한다.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을 소중하게 잘 간직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