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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ug 17. 2021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직장 생활 소고

공채를 진행할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받는 질문이 있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지원자들은 이유를 알면 다음번 지원 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중하게 부탁을 하거나,

떨어진 이유를 밝히라며 따졌다.

내가 일하는 분야의 지원자들이 특성상 기가 세서 그런지,

후자의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채용 관련 서적을 보면,

컨설턴트들도 비록 떨어지더라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던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라는 등의

post 면접 관리를 하라고 팁을 주던데,


실제 인사담당자의 입장은 어떠할까?

감사하다는 인사는 '이런 지원자도 있구나.'하고 감동을 주긴 한다.

그렇지만 그 감사레터가 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합격자가 다른 데 중복으로 합격이 되어서,

합격 사정권 외에 기회가 가더라도

성적순으로 뽑지, 감사레터를 쓴 사람을 뽑지는 않는다.

채용 관련 서적에서 간혹 인사담당자가 좋게 보아서

잘 풀린 사례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 사람이 면접도 잘 봤을 것이란 게 내 결론이다.


떨어진 사유를 물어볼 때

필기시험이라면 차라리 낫다.

명확하기 때문이다.

대게는 '합격권에 못 들었다.'까지만 이야기 하지만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지원자에게는

"합격은 몇 위(몇 점)까지, 아쉽지만, 당신은 몇 위(몇 점)입니다."

이렇게 알려준다.


국가유공자 등 가산점 비율도 법률상 정해져 있고,

회사 우대 사항은 사전에 가산점 비율을 정해놓거나

가산점 비율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정원 외로 추가한다.

필기시험은 명확하게 성적순이다.

- 이 점에서 나는 블라인드 채용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는데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시시비비를 없애기 위해 결격 사유만 없다면

필기시험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고, 성적순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적순은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대학 순위 순이다.




인사담당자로서는 고민이다.

면접에 떨어진 이유를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채용을 담당하던 초반기에는

당신은 훌륭하지만, 회사의 인재상과 맞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대부분은 여기서 그러려니 하는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내가 일하는 분야는 기가 센 사람들이 많다.


당신 회사 홈페이지의 인재상은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나는 이런저런 면에서 이러이러한 인재상에 딱인데

왜 내가 떨어졌냐? 고 물어보는 사람까지 생겼다.

"저에게 왜 이러세요?"라고 묻고 싶다.


사실 내가 매번 그 면접장에 매번 들어가는 것도 아닌지라

해당 지원자가 어떤 질문에 뭐라고 답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심사위원들이 각 항목별로 몇 점을 줬는지,

해당 지원자에 대해 특별히 메모한 사항은 있는지,

이게 힌트의 전부이다.


그렇다고 이걸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다른 지원자와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 지원자 역시 본인 외에 다른 지원자가 어떻게 더 잘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평가나 채용이나 주관을 최대한 객관화해보자는 건데,

그 주관의 객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요즈음은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면접 결과 순위로 뽑았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나도 우리 회사 인재상을 채용 홈페이지에서 밖에 안 보는데,

인재상에 안 맞는다?

표현은 멋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다.

물론 인재상은 중요하다.

채용 때 기준을 세울 때나, 역량평가를 할 때나,

그런데 그게 실제 사유일까?

내가 지원자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인재상에 맞네 안 맞네를 말할 수 있을까?


공채는 좀 덜한데, 수시 채용을 할 때는

그 부서에서 뽑고 싶은 프로파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부서 내 인력 구성 상 과장급 정도 대리급 정도가 좋겠다

성비 구성상 남성이면 좋겠다. 여성이면 좋겠다. 등등

- 물론 사원 3년 차, 대리급은 어디서나 잘 팔리긴 한다.


정말 이 사람이다 싶다면 그런 부분도 감안하겠다만,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사람일지는

같이 일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지원자들 입장에서야 갑갑하겠지만,

왜 떨어졌는지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채용을 진행하는 사람도 잘 모른다.

그러니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


사실 지원자가 더 뭘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채용을 진행했을 때 다른 지원자가 더 매력적이었을 수 있다.

같은 업종인데 이 회사에서는 떨어졌지만

같은 레벨의 다른 회사에서는 붙는 경우도 많다.


면접을 볼 때,

나도 이 회사에 대해서 알아본다 내지는

면접 경험을 쌓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면접에 떨어져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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