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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13. 2021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

직장 생활 소고

올해 초 처음으로 신입사원 멘토를 맡았다.

아쉽게도 나의 멘티는 수습기간만 채우고 회사가 잘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익'에 기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입사지원자들이 회사 사명이나 인재상에 맞추어 자소서를 쓰긴 하지만, 

신입은 소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왜 공익에 기여하고 싶은 지를 적었던 지라,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눈에 띄었었다.

조직적합성을 말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당신 회사에 준비된 인재다.'라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겪었던 사건과, 왜 그것이 중요한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등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입사지원서나 자기소개서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식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신입은 이상주의자였을까? 그는 진심이었다.

그는 회사가 '적당히 공익적인 것'에 대해 실망이 많았던 것으로 보였다.

사기업이다 보니 영리 추구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와의 마지막 면담에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진심을 담아서,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자아실현을 위한 곳이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자아는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실현하는 편이 낫다.




대학 졸업 전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다시 일을 구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일'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은 '사회와 나를 연결 짓는 다리'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부딪히면서 모난 부분이 둥글어지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음을 깨닫는다.

적절히 거리를 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타협해 가며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


회사에서 주고받는 정보들과, 나와 다른 생각들은 내 좁은 식견을 넓혀준다.

타인의 이야기는 책 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전달이 되며,

책에서는 굳이 표현하지 않는 일상이 드러나므로 어찌 보면 궁상맞고 어찌 보면 입체적이다.


일이 그리 소중하면서 왜 나는 신입사원에게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라고 했을까?




신입시절에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다.

올드한 회사는 더 그렇다. 

일에 재미를 느끼려면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연차가 낮다면 프로젝트에서 일부만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나마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는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한 방식이나, 재주가 많은 사람일수록 불만을 품기가 쉽다.


일에서 재미를 찾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프로젝트를 자신의 주관하에 움직일 수 있는 포지션에 올라간다고 해도, 오너가 아닌 이상은 완벽하게 자기 뜻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때가 돼서는 일 자체는 재미있지만, 일을 둘러싼 구조가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회사에서 보람을 찾기 힘들다면, 관심의 포커스를 나와 가족에게 돌려야 한다.

그게 취미 생활이 될 수도 있고, 재테크가 될 수도 있고, 부캐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북 튜버가 있다. 채널 이름은 '책한민국'이다.

대게 책의 줄거리와 본인 감상을 주로 하는 여타 북 채널과 달리 그는 책을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요약해서 읽어준다. 거의 한 시간 분량으로. 책의 진수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 채널에서 추천한 책을 구입한 적도 몇 번 있다. 

- 저작권 문제로 출판사에서 요청한 책만 읽어서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기는 하다.


그는 50대 엔지니어?로 책을 사랑하는 인구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채널을 시작했다고 한다. 

책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 이외 그는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한다.

은퇴 후 제2막의 인생을 위해서다.

심리학 공부도 하고 있는데, 학위를 받아서 커리어에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심리학이 궁금해서 공부한다.

그의 지식의 깊이가 채널을 더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가 회사에서 실제로 어떤 위치 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풍성할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일들이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다.




글을 쓰는 재주가 뛰어났던 나의 멘티도,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회사 생활 이야기를 써봐도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오지랖이라 평하면서도, 첫 멘티라 그런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하다.

회사에서의 내 일이 마음에 안 들지라도, 내게 주어진 범위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하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고, 만일에 그마저도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의미를 찾으면 된다.


아침에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책 읽기, 블로그에 독후감과 필사한 내용을 올려서 지인들과 공유하기 등으로 말이다. 

비록 수면시간은 줄지만 이 편이 나에게는 훨씬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소한 행복들은 내가 회사생활을 계속 해 나가는 데 있어 버팀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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