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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25. 2021

출근을 향한 나만의 의식

직장 생활 소고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지은이의 배우자는,

"난 만족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난 만족해. 가끔."이 배우자의 대답이었다.


지은이는 가끔 결혼을 후회하지만, (즉 대부분 만족하지만)

배우자는 가끔 결혼이 만족스럽다고 한다.(즉 대부분 후회한다.)

지은이의 배우자는 현명하게 화낼 줄 아는 사람인 듯하다.


남자나 여자나, '리추얼'이 있어야 삶이 재미가 있다.

이 책은 '의무'만 남고 '재미'는 잃어버린 남자들이 불쌍해서 쓴 책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여자들도 '의무'들에 허덕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여자들은 '리추얼'을 자주 행하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재주를 지닌 덕에

남자들보다 인생을 즐길 줄 안다고 평한다.

- 그래서일까? 남자들은 그런 걸 할 줄 몰라, 

배우자가 죽고 나면 더 빨리 늙는다.


나만의 리추얼은 아침에 단골 커피숍에서 책 읽기다.

병풍 같은 칸막이로 메인 홀과 구석자리가 구분되어 있는데, 

나는 칸막이 바로 앞이 아닌 앞의 앞자리에 앉는다.

나보다 먼저 와서 책을 보는 청년이 있어서다.


내가 일찍 와도 그 자리는 탐내지 않는다.

나보다 리추얼을 시작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의 리추얼을 존중한다.


그는 영어책을 소리 내서 읽는데, 

중얼거리는 게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아 

무려 20만 원이나 주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도 구입했다.


최근에 그 리추얼에 어떤 여자 한 분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늦게 도착한 날, 

내 자리에 턱 하니 앉아있었다.

사실 그 자리 내가 세를 내는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분이 제일 탐냈던 자리는 병풍 바로 뒤, 

영어로 중얼거리는 남자 자리였다.

사실 거기가 명당이기는 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니 말이다.


이분은 조금 더 일찍 온 날은 

이 남자분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자리싸움이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제 자다 깨면 벌떡 일어나 나간다.

그 자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게 5시반쯤 나가니 3명 중 1등이다.


그렇게 몇 주 지나니까, 

이 분은 병풍 뒤 남자가 회사로 가는 시간에 맞춰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분은 7시쯤 들어와서 7시 40분쯤 나간다.


이렇게 3명의 자리 잡기는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출근시간에 나만의 리추얼을 행하면서

회사 가기가 조금 덜 싫어졌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거의 1시간 반 좀 안 되는 여정은

출근하는 길이 아닌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회사 가기 너무나 싫은 월요일

'리추얼'은 빛을 발한다.

난 출근하는 게 아니라

나와 데이트하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자기만의 리추얼은...

지은이 말 따나 '의무'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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