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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an 21. 2022

부질없는 고양이와 거리두기

워킹맘 이야기

남편에게는 고얀 버릇이 하나 있다. 술만 취하면, 아이들을 괴롭히는 버릇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고 있는 아이들을 공중에 던져서 받는 기행?를 저지르더니,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는 아이들에게 그러지는 못하고 애꿎은 냥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냥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배 같이 약한 부위를 드러내는 건데, 남편은 냥이들을 발라당 눕히고 배를 간지럽힌다.

최근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술버릇이 냥이들 간식 주는 걸로 바뀌긴 했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감정표현이 다르거늘, 남편은 고양이도 강아지와 비슷한 줄 안다.

꼬랑지를 바닥에 탁탁 치는 건, 냥이들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인데,

남편은 "어? 기분이 좋은가 보네?! 더 해줘야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 혹은, 알면서도 하는 것일 수도? - 고양이 말 번역기 어플를 다운 받는 걸 보면 알고 하는 짓?이다.


며칠 전에는 술 취해 들어와서는,

"아빠가 간식 줄게." 이러더니, 갑자기 혼자 정색을 하고는,

"아빠 아니지. 난 아저씨야. 너희들 아빠 아니야."

이러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또 시작됐다 싶었다.

남편은 냥이들에게 늘 "나는 너희들 아빠가 아니다. 우리는 종이 다르다."라고 주지시킨다.

우리 집 레오 도도가 알아들을지는 의문이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혼자만의 거리 두기인 것 같다.

남편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레오도도

레오는 건강하게 잘 자랐지만, 도도는 입양 때 허피스에 걸린 상태였었다.

건강하면 사실, 정기적으로 챙겨줘야 하는 예방접종 주사 빼고는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그런데 아프기 시작하면, 병원을 혼자 못 가니, 데리고 가야 한다.

혼자 약을 먹을 리가 만무한 데다, 약 먹는 걸 거부하니,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 알약 건으로 쏘기, 분말은 츄르에 섞기, 시럽은 붙잡고 조금씩 짜 넣기.

그나마 시럽이 제일 편한데, 녀석들이 덩치가 커지자 이젠 알약을 주로 준다.

게다가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가 주로 냥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가서인지, 아니면, 병원비용은 내가 보탤 수 없다인지, 남편은 냥이들 병원은 네가 가라는 입장이다.(아울러 결재도 당신이 해라!)

- 묘한 고집이다. 아이들 학원비는 보태주면서, 큰 아이 수학 과외비는 못 대겠단다. 과외까지 시켜서 공부를 해야 하냐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우리 아들내미가, 학교 수업으로 2차 방정식을 깨우치지 못한다고!'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다른 과목은 모르겠으나, 수학만은... 안된다. 엄마가 수포자였잖니? (아드)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놈은 숫자 2등급이 아닌 알파벳 E등급을 받아와 나를 놀라게 했다.

둘째가 만든 도도 이모티콘 - 큰 아들래미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

아침에 남편에게 냥이들에게 아빠가 아닌 '아저씨'로 본인의 호칭을 정정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부질없는 짓은 그만두고 그냥 본인 마음이 땡기는 대로 행동하라고 했더니, 한술 더 떠서 이제는 냥이들에게 자기를 '주인님'으로 모시게끔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레오 도도는 말을 못 한다고요^^;;

아무리 혼자 '아저씨', '주인님'으로 불어봤자다.

레오 도도에게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나에게

'간식을 줄 것인가?', '목이 근질거리는 데 긁어줄 것인가?', '낚시 놀이는 안 하나?'라고요...


그냥 마음 가는 데로 사랑해주지. 그거 참 인정하기가 어렵나 보다.

밤늦게 술 취해 퇴근해도, 늘 문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며 반가워하는 냥이들이 너무너무 이쁘면 그냥 이쁘다고 하세요. 아저씨!


도도가 산책냥이던 시절, 지금은 늙어서?인지 안나가신다.
어려서부터 같이 커서인지 사이가 좋은 두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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