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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Dec 12. 2021

어머니, 고양이를 들이셔야 합니다.

워킹맘 이야기

'몇 시지?" 머리 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았다.

오랜만에 분명 스트레이트로  잤는데, 고작 새벽 4시였다. 5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미드 보느라 안경도 못 벗고 잠든 둘째를 깨울까 싶어 얼른 거실로 나왔다.

밤새 방 사이를 오가며, 가족들을 지키는 레오도 따라 나와, 아일랜드 식탁 한 구석에서 하품을 하며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두 눈을 꿈뻑이며 고양이 눈인사를 다. '안녕, 집사'

- 냥이들이 눈을 크게 꿈뻑이며 당신을 바라보거든, 그네들 나름 수줍게 애정을 고백하는 것이,

같이 눈인사를 해주시길.

'안녕, 레오' 같이 눈인사를 하고 목을 긁어줬다.

레오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이쪽저쪽 목을 갔다대면서 온몸으로 고롱거린다.

'고로롱, 고로롱' 어찌 들으면 남편이 작게 코 고는 소리와 비슷하다. 레오 몸에 손을 대니 고요한 진동이 느껴진다. 고양이들이 온몸으로 내는 낮은 주파수의 진동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고 한다. 실제로 고양이들은 자폐아 치료를 할 때 쓰이는데, 나는 이 부분이 궁금했다. 강아지들처럼 사람을 격하게 반기는 것도 아닌데, 왜 자폐아 치료에 고양이들이 투입될까?


궁금해하기만 했지 검색해볼 정도의 정성은 없었는데, 말 나온 김에 찾아봤더니, 네이버님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셨다.

고양이들이 강아지들보다 덜 격해서 그렇다고 한다.


연구팀이 6~14세의 자폐증 아이를 가진 11명의 가족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고양이를 입양한 후 아이들의 분리 불안, 과잉행동 등이 연구 기간 동안 감소했고 더 많은 공감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저자 칼리스는 “고양이가 개보다 더 나은 선택인 것은 아니지만, 자폐증을 가진 아이와 그의 가족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감각이 예민한데, 개가 가까이에서 크게 짖을 경우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면 고양이는 옆에 조용히 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다.

자폐증 아이에게는 개가 아닌 고양이가 최고의 친구? - 뉴스/칼럼 - 건강이야기 - 하이닥

 http://naver.me/GozvIwg


얼마 전에는 도도가 나와 둘째 사이를 중재를 했다.

그날은 지하철을 역을 놓쳐 지하철을 3번이나 다시 탄 날이었다. 정신줄을 놨는지 역을 다 지나친 것이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면 안 되겠다.'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어쩌다 보니 큰 아이 사고 친 거 수습하느라 욕실 대청소까지 했다. 멍하니 있는데, 둘째가 같이 웃긴 동영상 짤을 보자고 했다.

"엄마가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 조금만 쉴게." 이렇게 잘 타이르면 아이들도 알아듣는다고 육아서적들은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둘째는 좀 집요한 구석이 있다.

결국 약한 고리에서 터졌다. 둘째에게 공감능력이 없다는 둥 온갖 말을 퍼부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10여 분간 쳐다봤는데, 도도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둘째에게 몸을 비볐다.

도도는 이내 나에게도 공평하게 몸을 비벼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부비를 했다. 얼결에 도도를 쓰다듬고 있던 둘째와 나는 몸이 고 나는 둘째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 엄마가 오늘 너무 힘들었나 봐. 미안해."


레오는 큰 아이가 초4 사춘기를 겪을 무렵에 우리 집에 왔다.

일하고 공부하느라,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나는 시험이 끝나면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약속을 했다. 계약의 조건은 성취되었으나, 반대급부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큰 아이가 팩폭을 했다.

"엄마, 실은 고양이 안 데려 오고 싶어서 지금 내가 알레르기가 있다는 둥 이러면서 핑계되는 거잖아."

초 4도 알 건 다 알지.

사실 그랬다.

'고양이 똥은 누가 치우지?', '고양이 양치질은 누가 시키지?' 그 '누가'가 항상 '내가'될 것 같았다.

- 고양이 밥은 자동급식기로 해결했고, 고양이 똥은 자동청소 화장실로 해결했다. 고양이 양치질은 모듈화가 불가능한지라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반대했던 남편은 레오가 들어오자 얼마 되지 않아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들이자고 했다. 레오가 외롭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너무 이뻐 또 낳는 그런 마음일 텐데, 레오가 외로울 거라고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도도를 데려왔다.


둘은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데, 어려서부터 같이 키워서 그런지 솜방망이 발로 서로 때리다가, 어느 순간 보면 같이 핥아주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하루 종일 아이들이 집에 있지만,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조금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고양이들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건 정말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고민 고민을 해보고 결정할 문제이지만, 처음에 망설였던 것에 비해, 지금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좌 레오 우 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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