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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13. 2021

둘째가 알바를 시작했다.

워킹맘 이야기

둘째가 알바를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는 의뢰인을 집으로 초대해 나란히 냥이들에게 츄르를 주기도 했다.

의뢰인은 중1, 의뢰를 받은 둘째는 초5이다.


의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둘이 같이 게임을 한다.→②게임 영상을 녹화한다.→③자막과 효과 등을 넣는다.→④의뢰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 한다.

둘째는 신이 나서 시키지도 않은 ⑤의뢰인 계정 댓글 관리도 자처하고 있다.


요 의뢰를 수행한다고 아이는 부가세 제외 한 달 구독료 17500원짜리 애프터이펙트를 구해달라고 아빠를 졸랐고, 아빠는 왜 사달라는 지도 모르고 결재를 했다.

나중에 게임 영상 편집 알바용이란 걸 알게 된 아빠가 물었다.

(아빠) "알바비는 얼마나 받아?"

(아이) "2달에 5천 원이고, 6개월분을 한 번에 받았어."

(아빠) "너 계좌 거래가 가능하니?"

(아이) (씨익 웃으며) "초딩들은 문상(문화상품권)이나 구글 기프티카드 번호로 거래해."


(아빠) "근데 애프터이펙트 구독료가 부가세 빼고도 한 달에 17500원인데, 2달에 5000원이면, 이거 노예 계약 아니야? 엄마가 노무사인데, 최저임금도 못받고 일하는 거냐?"

(아이)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원래 내가 무료로 해준다고 한 건데 그 형아가 착해서 구글 기프티카드를 준거야. 난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거라고."




맞벌이 부부인지라,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불안한 마음에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스마트 폰을 사줬고, 둘째는 큰 아이가 핸드폰을 바꿀 무렵이었으니까 아마 7살 때인가 사준 것 같다.


일찍부터 게임의 세계에 눈을 뜬 둘째는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게임에 매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정 근처를 떠나 멀리 이사를 오면서 아이에게 게임용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준 게 계기가 되어, 아이는 스마트폰+컴퓨터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간 둘째가 컴퓨터를 통해서 한 것들을 기억나는 데로 이야기해보자면,

1. 코로나로 학교에서 강제로 EBS를 듣게 하자, 알 수 없는 출처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해와 방송국 해킹 시도

   ☞ 방송국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아이 컴퓨터 화면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2진 코드를 화려하게 쏟아냈지만, 결국 그걸로 끝.

2. 가짜 뉴스 배포하기

   - 아파트 중위 가격이 9억 대라는 기사(아파트 사진 포함)를 보고, "위 아파트에서 꼬레오(우리집 냥이 이름)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라고 기사를 수정하여 가족들 메일로 전송

    ☞ 신문사도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바뀐 뉴스 화면에서 "메일로 공유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내 메일에는 원 기사가 공유됐다.

3. 이더리움 채굴 알바

   - 동영상 편집 알바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지 바로 이야기했지만, 이더리움 채굴 알바는 나중에 컴퓨터를 포맷하면서 실토했다. '잠깐 재미로 해봤다'라고

     ☞ 우리 집은 평균 전기요금이 다른 집에 비해 5~6만 원이 더 나와, 내가 전기를 많이 쓰나 생각했는데, 범인이 이 놈이었던 걸까?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을 챙기기 어려우니, 스마트폰은 주말에 일정 시간을 두고 사용하게 하고 주중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게임을 안 하면 아이들끼리 대화도 안 되는 세상인데, 우리 아이만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아이가 게임 중독에 걸릴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둘 다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를 주자'는 편이다.

스스로 몸으로 체득한 것만이 교훈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컴퓨터 건 스마트폰이건 적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면 그다음은 아이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건 방임과는 조금 다르다.

일례로 아이가 잠을 지나치게 안 자고 학교 숙제는 물론 온라인 출석체크도 제대로 안 하고 있어 컴퓨터를 잠깐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다.

'적정 수준의 가이드라인'과 '약간의 제재'는 필요하다.


얼마 전에 사주를 보러 간 곳에서 둘째가 게임만 한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사주 봐주시던 할머니 왈,

"아이 사주에 'OO'이 나오는 데? 자기 길이면 어떻게든 찾아가게 되어 있어."

"집에 가서 'OO님'이라고 한 번 불러봐 봐."

"언젠가 불현듯 엄마가 'OO님'이라고 한 게 생각날 거야."


약이라면 똥도 먹일 기세로, 집에 와서 아이에게 바로 'OO님'이라고 불어봤다.

아이의 반응은 "엄마 왜 저래?!"였다.


그러든 말든, 나는 가끔 생각나면 'OO님'이라고 불러본다.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야

"엄마는 가끔 컴퓨터를 부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너를 믿어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단다."


구글이 보내준 아이의 주간 컴퓨터 사용시간

참고로 수요일 아침에 가족 여행을 가서 금요일 오후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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