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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23. 2021

사회성 없는 중2 남자아이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워킹맘 이야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말, 둘째 아이가 2학년 말 때

우리는 원래 살던 곳에서 지하철로도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지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은 그럭저럭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큰 아이는 6학년에 올라가서는 친구도 몇명 사귀었다.

자기들끼리 만화방도 다니고, 지하철을 타고 롯데월드로 놀러 가기도 했다.


큰 아이는 자기처럼 얌전한 범생이 스타일의 아이를 좋아하는데, 

본인과 다르게 공부를 잘했던 큰 아이의 친구들은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거나, 국제중에 입학을 했고,

큰 아이는 혼자 아파트 바로 옆 중학교를 가게 되었다.


남들보다 친해지는 데 2~3배 정도 시간이 걸리는 아이는,

1학년은 코로나로 제대로 등교도 못한 채 어영부영 보냈다.

2학년은 2/3 등교 정책으로 종전보다 학교를 자주 가게 되어,

2주는 학교를 갔다가 1주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학교에서는 짝을 짓거나, 팀으로 하는 과제들이 간혹 있었다.

반에 아는 얼굴이 아무도 없는 아이는,

그때마다 민망해했다.


가끔 나에게, 

"엄마, 나 오늘도 한 마디도 안 했어."

"엄마, OO이 말을 걸었는데, 내가 제대로 대꾸를 못했어."

심지어는,

"엄마, 나 말하는 걸 까먹은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중2이면 사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엄마들이 나서서 친구들을 만들어 줄 나이는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나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놔뒀었다.

'내가 오죽 그러면 엄마가 나설까?'

아이의 자존감만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와이파이 셔틀을 당할 뻔한 일이 생겼다.

아이는 반에서 자꾸 시비 거는 아이가 있다고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큰 아이에게 와이파이 셔틀을 시키려 해서,

큰 아이가 그 아이에게 쌍욕을 한 것이다.

그 일로 반 전체에 자기 이미지가 쌍욕 하는 아이로 굳었다고 한다.

- 난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물론 욕한 걸 잘했다고 한 게 아니다. 

자기는 자기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잘했다고 한 것이다.

*와이파이 셔틀 : 신종 학교 폭력

https://ko.wikipedia.org/wiki/%EC%85%94%ED%8B%80_(%ED%95%99%EA%B5%90_%ED%8F%AD%EB%A0%A5)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운영위 엄마 아이와 짝을 지어 방학 중 스터디를 짠 것이다.

회사에서 전면 재택을 했던 기간에도 나는 평가 때문에 매일 회사에 출근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전면 재택 기간에는 평가고 뭐고 가능하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스터디 카페에 아이들을 넣으려고 했는데,

두 군데 정도 돌아다녀보니, 마땅치가 않았다.

같이 엠베스트 강의를 듣고, 서로 설명도 해주고 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계속 끼고 있는 상황도 불편해 보였고,

대화를 편하게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중2 남자아이 방학 중 스터디 계획표


두 녀석의 각자 학원 시간을 제하고, 주로 화, 목, 금 오전 3시간을 잡아 

수학과 과학 선행을 나가기로 했다.

아이들 방학 숙제에 영어소설(Flipped)을 읽고 퀴즈 푸는 게 있어서, 

소설 챕터도 일정에 맞춰 나눴다.

- 이건 막상 해보니, 아이들이 구어의 다양한 표현 때문에 해석을 너무 힘들어해서 

그냥 내가 직독 직해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영어시간이 점심시간이라 도중에 회사에서 전화올 일은 없다.)


오늘 2일째 스터디를 진행했는데,

큰 아이는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건가?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답풀이를 설명해주라고 했더니, 연습장에 삼각형만 그리고 있고, 

상대방 아이는 그걸 보고 알아서 깨우쳤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내 자식이지만, 저렇게 비사회적이니, 친구가 없지 싶었다.

기도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와중에 더 황당한 건,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둘째가,

자기 게임 시간에 제한을 걸자,

"엄마, 형아랑 같이 할만한 괜찮은 게임이 있어. 

눈치게임인데 채팅이랑 같이 하면, 형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될 거야."

라고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이 와중에, 저 녀석은

형아를 생각하는 건가?

자기 게임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늘리고 싶은 건가?


둘째 녀석, 학교 통지표를 가져오는 날,

뜬금없이 엄마 생각이 나서 샀다며 휴대용 연필깎이와 마이쮸를 주길래,

통지표나 달라고 했더니 씩 웃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걸 보고,

속으로, '그래도 너는 세상 사는 법을 아는구나!' 싶었는데,

오늘은 조금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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