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정 Oct 30. 2022

아기띠를 메고 엉덩이를 흔들어요. 우리는 사랑하니까요.

우리 아이 사랑만 있으면 된다.

왕복 4차선 도로 인도변에 엉덩이를 흔드는 세 가족


아* 만두에서 만두를 테이크 아웃하려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아기띠를 멘 엄마가 있었다. 아기띠는 아이 얼굴이 밖으로 향하는 디자인이었다. 아이는 뭐가 좋은지 눈이 반달이 되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이가 웃고 있는 걸 알고 있는지 엄마도 같이 웃고 있었다. 옆 가게인지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 엄마는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왕복 4차선 도로 옆에 인도변이었다. 아이 엄마 앞에는 아빠가 서있었다. 아빠는 아기와 엄마를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자 따라서 같이 흔들었다. 나는 순간 이 행복한 광경에 웃음이 나왔다. 인도 한가운데에서 엉덩이를 음악에 맞춰 흔드는 세 가족. 아이는 흥이 나 깔깔거렸다.


남산 사랑의 자물쇠, 사랑이 깨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큰 아이가 과외를 하는 동안 다른 가족들은 남산을 다녀왔다. 남산 타워에 무수히 걸려있는 사랑의 자물쇠들과 그 안에 적힌 메시지를 보더니 둘째가 한마디 한다.

"이 사람들, 나중에 헤어지면 이 자물쇠 끊으러 다시 오나? 찾을 수는 있을까?"

아이는 사랑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나 보다.  

"사랑하고 헤어질 수도 있지. 그렇다고 지나간 과거를 지우러 굳이 자물쇠를 끊으러 올 필요가 있을까? 자물쇠 어디다 걸었는지 찾기도 어렵겠다."


집에 오자마자 큰 아이는 학원을 간다고 한다. 짠한 마음에, 학원을 바래다주러 나왔다. 동생이 남산 자물쇠를 보고 한 이야기를 전하자, 큰 아이는 유튜브에 진짜로 자물쇠 끊은 이야기 동영상이 있다고 한다.

한국 남자를 사귀던 외국인 여자였는데, 헤어지고 나서 비행기 타고 남산 가서 그 자물쇠를 찾아내서 끊었다. 그 이야기가 그 여자분 영상이었는지, 이런 일도 있더라 식의 다른 사람 이야기였는지 모르겠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어 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다시 찾아와 자물쇠를 끊을 정도로 짙은 마음이라니! 배신에 의한 상처이건, 양립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극복하지 못했건 간에, 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한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을 꿈꾸기에 미래에도 이 사람과 계속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랑에 영원을 꿈꾸던 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순간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까지 잊어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원은 미래의 시제를 갖는다. 미래에 그와 행복하지 못할지라도 과거나 현재가 부정될 이유는 없다. 사랑을 약속하고 남산에 자물쇠를 걸어 맹세를 하던 그 순간, 지나간 과거의 한 시점에서 무한의 영원을 만났을 테니까.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아*만두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던 세 가족이 보여준 환하고 깨끗한 웃음이 생각난다. 그 순간에 행복하고 그 순간에 충실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길 끝에 당도한 바람으로 머리채를 묶은 후

당신 무릎에 머리를 대고 처음처럼

눕겠네 꽃의 은하에 무수한 눈부처와

당신 눈동자 속 나의 눈부처를

눈 속에 모두 들여야지

하늘을 보아야지

당신을 보아야지


花, 람, 花, ,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


그날이 오면

내게 필요한 건

이름 붙이지 않은 꽃나무 한 그루와

당신뿐.


당신뿐

대지여


- 김선우, 「花飛, 그날이 오면

홀로 있을 당신만을 눈에 새기고 눈을 감는 것은 아픈 일이다. 아름다운 꽃과 같은 당신, 그리고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꽃들이 함께하는 모습, 시인의 말처럼 꽃들과 함께 “당신도 풍경이 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야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가 될 테니까.
<출처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p. 309-p.310 / p.314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보내는 신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