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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29. 2021

우리집이 생겼어요 feat. 층간 소음

워킹맘 이야기

요새 직장인들이 집 거지, 비트코인 거지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평상시 재테크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냥 살기에 바빴던 나는,

이직을 하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취업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일하고 자격증 공부를 같이 하느라,

도저히 무언가를 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우리 부부는 근로소득은 꽤 되나 자산소득은 0인,

'속 빈 강정'이었다.


소비규모가 크냐고? 아닌 것 같다.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매우 소박하구나!' 느낄 때가 더 많다.

원래 돈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

그런데 왜 집을 안 샀냐고?

1. 알아보기 귀찮았다.

2. 빚이 무서웠다.

집을 사게 되면 모은 돈이 없으니

대출을 크게 져야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빚을 오랫동안 갚아야 했던지라,

빚을 내는 게 너무 싫고 무서웠다.

- 왜 모은 돈이 없는 지는 구구절절하니 굳이 말하지 않는 걸로


우리 부부가 이번 사이클에 집을 사게 된 건,

집값이 올라서도 아니었다.

문제는 층간 소음.

아랫집 덕분?이었다.


우리 집이 너무 시끄럽다고

아랫집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장을 망치로 두드렸다.

항변을 하자면,

우리 집에는 소음방지용 매트리스가 3개 깔려있었고,

당근 두꺼운 소음방지 슬리퍼도 신었다.

그 아파트에 산 8년 동안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그분들은 저녁에 내가 설거지를 한다고

수시로 망치를 두드렸던 사람들이다.

- 싱크대 물소리가 들린단다. 나는 그 사람들이 환청을 듣나 했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을 친정에서 먹었고,

남편과 나는 밖에서 해결해서,

저녁 설거지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중에 큰 아이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돼서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만 봤는데,

망치를 너무 심하게 두드려.

나 혼자 있는데 무서워."


당시 층간 소음은 아이의 일기장의 메인 주제였다.

큰 아이에 비해 자기표현이 강한 둘째는,

윗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왜 우리만 참아야 해. 나도 항의할 거야."라고 했다.

- 그럼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 말렸다.


그분들이 이사한 이후로 우리는 한 번도 세탁기를 돌린 적이 없다.

친정 엄마가 빨래를 들고 세탁을 해서 가져오거나,

주말에 몰아서 빨래방에 가져갔다.


그 시절이 생각나니 여러 일화가 떠올라, 그만 생략한다.

결국 나도 참다 참다, 소음방지위원회인가 뭔가에 내용을 보냈고,

거기서는 조사를 나온다고 했다.


아랫집은 자기들은 이런 건 무시하겠다고 쿨하게 말하더라.

그 조사라는게 아랫집이 동의해야 소음측정이 가능하다.

- 나는 그 사람들이 정신병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1년을 살았는데,

우리 부부도 어지간히 귀찮았나 보다. 일단 참았다.

우리가 소음을 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정도면 진작에 큰일이 날 법도 한데...


결국 나는 이사는 안 가겠다는 남편을 설득했다.

솔직히 이건 우리가 내는 소음이 문제가 아니라,

아랫집이 많이 이상한 것 같다고.

아이들 둘만 낮에 있을 때가 많은데,

솔직히 걱정된다고.


그래서 친정이 사는 동네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집값이 싼 곳을 찾아 여기로 이사를 온 것이다.


당시에는 주말에도 혹시나 소음문제로 뭐라 할까 봐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고,

집에서 빨래 한번 맘 편히 한 적이 없지만,


결국 '전화위복'이 되긴 했다.

극성맞은 아랫집 덕에,

우리도 우리 집이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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