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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May 01. 2021

경위서를 제출하지 않아서 징계를 받았어요.

인사 노무 사례 100개면 되겠니?

상황#1 수진 씨는 여성복 매장 점포 사원으로 근무한다. 10시 출근인데 다들 9시 30분이면 출근을 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화장 등을 한다. 수진 씨 근로계약서는 10시 출근으로 되어 있는데, 점포 매니저는 조금 더 일찍 출근하는 게 아깝냐는 식으로 10시 딱 맞춰 출근하는 수진 씨를 아니꼽게 보고 있다.

10시에 딱 도착하기나 했으면 별 일은 없었을 텐데, 수진 씨는 늦잠 자는 버릇을 못 고치고, 가끔 지각을 한다.

많이 늦는 것은 아니고 5분~7분 정도다. 도착해서 유니폼 등을 갈아입고 나면 20분 정도 지나있다.

매니저와 동료들은 못마땅하지만, 수진 씨 생각은 그렇다.

'자기 권리 자기가 못 찾는 거지!'

그런데, 매니저 벼르고 별렀는지, 수진 씨에게 '경위서'를 작성하란다.

'쓰라면 써야지 뭐~.'수진 씨는 경위서를 바로 작성해서 내는데, 

매니저는 "앞으로는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없다고, 빨간 줄을 휙 긋더니 다시 쓰란다.




매니저 입장에서는 정말 갑갑한 일일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 9시까지 출근인데, 왜 다들 8시 30분까지 나오지 않으면 눈치를 준다고.

그럴 거면 30분 연장수당을 달라고."

사실 저는 9시에 업무가 시작할 수 있어야 출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장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출근인 것은 아닙니다.

9시까지 도착하시면 됩니다.

그분에게는 "연장수당 받으시려면 부서장 결재받으셔야 해요."라고 말했죠.


수진 씨 이야기로 돌아와서,

10시에 출근만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지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구두 경고, 경위서 작성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경위서를 쓰게 한 것입니다.

같이 일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수진 씨의 매니저는 속으로

'자기가 자기 손으로 쓴 거니까 지키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시말서, 경위서 등이 '사죄문', '반성문'의 의미를 가진다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근로계약은 '근로'와 '임금'을 교환하는 계약이지, 근로자의 생각과 판단까지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취업규칙에서 사용자가 사고나 비위행위 등을 저지른 근로자에게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경우, 그 경위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취업규칙 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어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에 따라 효력이 없고, 그에 근거한 사용자의 경위서 제출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 (대판 2010. 1. 14, 2009두 6605)




상황#2 이철우 과장은 회사로부터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 과장은 시설관리 담당인데, 회사 사옥 내 엘리베이터가 출근시간 대에 고장이 나서 1시간 동안 안에 사람들이 갇혀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업체도 늦게 도착해서, 30분이면 해결될 일이 1시간이나 걸렸다.

이 과장은 이래저래 근거를 남겨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일피일 경위서 작성을 미뤘다.

거의 2주를 안 쓰고 버텼는데, 아뿔싸! 엘리베이터 사고가 또 났다. 

인사팀은 이번 건에 대해서도 경위서를 요구했는데, 이 과장은 이번에도 안 쓰고 버텼다.

그런데, 회사는 이에 대해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 과장이 알아본 바로는 경위서를 강요하는 건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는 던데?

회사는 이 과장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을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 아닐까요?

정당한 명령입니다.

상황#1에서 수진 씨는 경위서, 경위서 등이 '사죄문', '반성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당한 명령이 아니죠.


그런데, 이철우 과장님은 케이스가 다릅니다.

경위서에는 대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실제로 사건이 발생을 했고, 시설관리 담당자로서 이철우 과장은 사건 재발방지 등을 위해 사건의 경위를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위서를 내기 싫은 이 과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이런 경위서가 한 두 개 쌓이다 보면,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고, 따지고 보면 이 과장님이 잘못한 게 아니라, 회사가 노후화된 시설을 제때 교체하지 않은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시말서(始末書), 경위서(經緯書)는 사건의 시작과 끝(자초지종), 사건의 경위 등을 적어서 내는 문서입니다. 

이 과장님은 이 말의 의미에 충실하게 적용해서 6하 원칙대로 사건에 대해서 시말서(내지는 경위서)를 작성하시면 됩니다.


사고나 비위행위로 인한 것이건, 취업규칙에 징계처분을 받아 시말서를 제출하는 것이든, 시말서 작성을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이는 회사의 업무상 정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그 자체가 징계사유에 해당합니다.

(대판 1991. 12. 24, 90다12991)




인사실무자 Tip


사고나 비위행위를 저지른 근로자에게 시말서(경위서)를 요구하거나, 취업규칙 등에서 징계처분을 받은 근로자가 시말서(경위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 다만, '사죄문', '반성문'의 의미로 시말서(경위서) 제출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상 명령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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