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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Nov 10. 2023

물건도 정이 든다

책장과의 이별



오랜 책장과의 안녕.

물건을 버릴 때 늘 마지막 순간에 왠지 코 끝이 찡해진다.

막상 오래되고 이젠 버려야지 하며 이렇게 내놓고 나면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한다.


"고마웠어, 안녕."


어릴 때도 그랬다. 금성이란 마크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세탁기가 오래돼서 망가지자 엄마는 새 세탁기를 사셨다. 그때도 어린 맘에 섭섭해서 눈물이 왈칵 났던 기억이 난다.  오래 보던 물건이 빠지니 왜 그리 섭섭한지.


매일 볼 땐 몰랐는데 막상 이별하는 순간이 오면 어떤 물건이든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맘이 든다. 함께 한지 오래되면 물건에도 정이 드니까. 평소에 엄청 애지중지했건 아니건 이별의 순간엔 비슷한 감정이 든다. 물론 더 좋아했던 물건은 파장이 더 크.


어릴 적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게 취미였는데 이사를 하며 놓을 공간이 마땅찮고 어릴 때보다 자주 치지를 않고 이사할 때 번거로우니 엄마는 처분하자 하셨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집에 오니 피아노가 없는 거다. 엄마는 내가 섭섭해할까 봐 학교 간 사이 아저씨를 불러서 가져가게 하셨다고. 마지막 인사도 못해서 그날도 어찌나 슬프던지. 이건 꽤 오래갔다. 아직도 어린 시절 쳤던 옛날 피아노책과 주로 가요인 노란색 을지악보를 간직하고 있다.


이별에 대해 생각하니 유치원 졸업식도 떠오른다. 사진을 보면 나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성숙했던 건지 마음이 여렸던 건지 감성이 풍부했던 건지.


(그렇다고 평소에 쉽게 눈물짓는 편은 아니다. 남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 데다 보기보다 이성적인 영역이 발휘될 때가 많아서다. 특히 대놓고 울게 만들겠다 작정한 신파 영화에 내 눈물은 없다. 오히려 예쁜 하늘을 볼 때, 나 홀로 울컥.)


책장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야기로 가버렸는데 사실 저 책장은 나름 이야기가 있다. 남편과 나의 결혼시절을 함께 했던 아이다. 결혼기간 동안 총 5번의 이사를 했다. 이집트로 날아갈 때도 같이 갔다. 이집트에서 또 한 번의 이사를 할 때도 같이 갔고 다시 한국에 왔을 때도, 한국에서 다시 이사를 한 지금까지, 16년을 우리와 동고동락을 했구나.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처음에는 세워놨었는데 너무 높아서  옆으로 눕혀놓고 썼다. 처음에는 내 책과 남편의 책을, 아이들이 태어나고는 아이들 책을 가득 채웠었다. 튼튼하고 널찍해서 정말 유용하게 잘 썼다.


가끔 물건을 버릴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도 언젠가 끝날이 올 텐데...'


이사를 하거나 정리를 하려고 급하게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닌, 평소에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이별하는 순간에도 급하지 않게 마지막을 나누고 싶다. 내 인생도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어 진다.


'책장아 안녕~~'


이렇게 글까지 쓰고 나니 이제 진짜 안녕이다.

오래된 물건을 버릴 때 언제까지 코끝이 시큰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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