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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y 27. 2024

자기, 당장 집으로 와

십 년 만에 찾아온 아이

딩크족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던 남편은 조카들을 만날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몸으로 놀아주는 자상한 삼촌이었다. 나 또한 늘 미래를 그릴 때면 상상 속엔 늘 아이가 있었다. 나중에 이런 책을 함께 읽어야지, 이런 곳에 함께 가면 좋을 텐데 하며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아이가 뛰어노는 것이었다.


삼 년 전 유산을 겪고 나서 금방 다시 찾아올 줄 아이는 영 소식이 없었다. 남편과 결혼한 지도 벌써 오 년이었다. 주변에선 늘 '애기는 언제?'냐며 물어오기 일쑤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시험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혹스러워하는 우리에 비해 그들은 너무나 당연한 어투로 물어왔다. 그런 우리가 '아이가 없어도 둘이서도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라는 일종의 선언을 한 것은 올해 초 호주여행에서였다. 그러자 비로소 어떤 속박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주변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오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늘어나는 딩크족들에 편승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저 둘이 온전히 행복할 자신이.


행복한 딩크족이 되려는 일환으로 우리가 제일 먼저 들인 것은 반려동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그렇게 하니는 우리 가족의 세 번째 구성원이 되었다. 태어난 지 네 달 된 갈색 푸들은 어색하면서도 빠르게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어왔다. 개육아를 하면서 남편과 나는 어색하지만 서로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 새롭게 공부를 할까 고민도 해봤다. 입학 전까진 스페인어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 보니 겨우내 흐렸던 날이 점점 밝아오고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하니가 집에 온 후 이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그날은 아주 평범한 오후였다. 봄날의 햇살은 창문을 넘어 집안으로 넘실거렸고, 온기가 강아지의 작은 몸을 타고 나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는….킁킁.

킁킁? 강아지는 그날따라 나의 다리사이를 민망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끊이지 않는 킁킁거림. 순간 이상한 예감이 뒤통수를 스쳐 지나갔고, 혹시나 싶어 화장실 구석에 쳐박아 둔 임신테스트기를 뜯었다.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임신테스트기에는 두줄이 나타났다.



[자기야, 당장 집으로 와.]

짧은 메시지 뒤에는 테스트기를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낸 뒤였다.

남편은 답장대신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게 뭐야?”

남편의 목소리엔 기쁨보다 당혹감이 듬뿍 담겨있었고 그저 빨리 될 수 있는 대로 집으로 오라 하는 내 목소리도 한껏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이 사 온 다른 임신테스트기도 여지없이 두줄을 나타냈고, 우리는 일단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서로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이 공들여 계획을 세우면 신은 비웃으며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든다 하지 않는가. 우리의 경우엔 그 신이 삼신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단둘이 함께 보낸 연극의 1막이 내리기까지 딱 십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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