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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Jun 24. 2024

맘카페가 주는 위로

임신한 사람만 알아요



     “임신한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


남편은 현관문 앞에서 서있었고 나는 그 맞은편 서있었다. 그렇게 굳은 얼굴로 우리는 한참을 대치중이었다. 그의 말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굵고도 강력한 한방. 남편의 어깨를 차갑게 스치며 나는 강아지와 집을 나섰다. 차오르는 눈물에 한여름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번져왔다. 독일의 여름은 한국만큼 후덥지근하지는 않지만 오월 말 한낮의 뙤약볕은 정말 괴로울 정도로 따갑다. 살갗을 바삭바삭하게 태우는 정오의 뜨거운 햇볕처럼 내 감정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강아지만 신이 난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앞서 걷고 있었다. 십 년을 함께한 남편이 한순간에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니까? 언제는 우리가 임신한 거라고 하더니, 담배를 끊으라니까 갑자기 임신한 건 나라는 게 말이 돼?”


그러자 평소 남편과 알고 지내던 친구의 대답.

     “틀린 얘기는 아니지. 나는 네 남편 이해되는걸?”


한껏 열을 올리 남편 흉을 보다가 친구의 대답을 들으니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변은 네 마음을 알겠으나 사실 임신은 남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담배를 끊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물론 아기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끊는 게 좋겠지만 한 번에 끊는 게 쉽지 않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주라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의 말도 어느정도 맞았다. 하지만 나는 술, 담배가 문제가 아니라 혹시나 아기가 잘못될까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마저 끊었다. 매운 음식, 날것 모두 조심해야 했다. 그런 나의 비해 남편은 너무나 불성실하게 느껴졌다. 이제 부모가 될 우리 둘이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협조하지 않는 남편이 너무나 미웠다. 무작정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통화를 끝내자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리고 임신한 후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말로 뭉퉁그려서 넘어간 일들, 속상하지만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일들이 바람소리와 함께 모두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동네의 한 공터에서서 한참을 울었다.




이때쯤 나에겐 유독 서러운 일이 많았다. 정말 오만가지 일이 다 서운했다. 몸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데 마음까지 심란하니 정말 아기와 나 혼자만이 세상에서 똑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임신한 몸으로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임신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내가 아이를 가져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듯했다. 나에게 임신은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더 적어진 듯 느껴졌다. 스스로도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괜스레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몰두하기 시작한 게 임신과 육아에 관한 커뮤니티로 유명한 일명 ‘맘카페’였다. 가끔 몇 시간째 누워서 핸드폰으로 맘카페를 보고 있을때면 남편이 슬며시 물어오기도 했다.


     “또 그 커뮤니티 보고 있는 거야? 정보를 찾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진 마.”

나는 들은 척 만 척 스크롤을 아래로 죽죽 내렸다. 당시 나는 임신 주수별로 게시판을 옮겨 다니며 그때그때의 고민을 맘카페를 정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어떻게 읽는 것만으로 고민이 해결되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이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 얼마나 몸이 불편한지 그리고 마음이 불안한지 남편에겐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겨우 이해하는 것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경험해 본 터였다. 주변에 임산부 친구가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는 것도 한 몫했었다. 엄마에게 연락해 투정을 부리기엔 먹은 나이가 민망했고 떨어져 있는 거리가 황망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임신 중 호르몬에 의해 감정변화가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할 거라고 알려주는 정보는 쉽게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감사할 줄 모르고, 배부른 소리만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맘카페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듯했다. 털어놓을 데가 없어 글을 쓴다는 사람들 아래로는 자신도 그렇다고 힘을 내라며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맘카페가 만능해결사는 아니어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에게서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한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나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강아지는 긴 산책에 목이 마른 지 헉헉거리며 마른 숨을 몰아쉬었지만 집안 공기는 나갈 때만큼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남편은 책상 앞에 앉아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내가 들어온 것에 안도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나가있던 시간만큼 불편했던 그의 마음을 말이다. 어디 갔다 왔냐며 슬며시 말의 물꼬를 튼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그럴 때 네가 잔소리를 하면 부끄러운 마음에 괜히 더 화가 나는 것 같아.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노력할게. 약속해. “

“… 아니라고 해”

“뭐라고?”

“나만 임신한 게 아니라고 해. 우리는 함께 부모가 되는 거라고.”

“우리는 함께 부모가 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네가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고마워. “


남편은 두 손을 벌렸고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 사람과 부모가 되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뱃속의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듯 적막했던 집안을 다시 따듯하게 만든 것은 공감의 한마디였다. 강아지는 자신도 껴달라는 듯 우리 둘의 다리를 톡톡 치며 점프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뱃속에서 무언가 슬며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첫 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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