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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Jul 01. 2024

거기 누구 없소

드디어 시작된 태동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항상 등 뒤에 슬그머니 붙어서 나를 괴롭히던 것은 ‘불안함’이었다. 독일의 산과 검진은 한 달에 딱 한번 있다. 내가 검진과 검진 사이에 할 수 있는 것은 오로니 아이가 무사히 잘 크고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매번 초음파로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험으로 보장되는 초음파검사는 임신 기간 중 단 세 번뿐이었다. 그 외에 부모가 원하면 초음파 검사를 해주긴 했지만 꽤 비싼 금액을 내야 했고 그마저도 오분내외로 아기가 주수에 맞춰 잘 크고 있나 정도를 봐주는 정도었다. 내가 다몄덤 병원에서는 초음파로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이 열개가 맞는지, 양쪽 귀가 잘 있는지 등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이다.


     “한국에선 서브병원이라는 게 있대.“

     “그게 뭐야?”

     “산모들이 주로 가는 산부인과 말고도 궁금하면 언제든지 가서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병원인가 봐.”


여전히 나는 소파 위에 누워 핸드폰으로 맘카페를 둘러보고 있었다. 맘카페에서 새로 알게 된 내용을 남편에게 알려주니 남편은 눈썹을 으쓱하며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표정이다. 나 또한 말을 길게 잇지 않고 다른 페이지로 쓱쓱 스크롤을 내렸다. 사실 나도 한국에선 몇몇 산모들이 ‘서브병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내심 유난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원할 때마다 초음파를 볼 수 있으면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 상태가 유난히 안 좋은 날이나 갑자기 불안감이 커지는 날이면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지곤 했다. 독일에선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병원에서 새로운 예약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임신 전에 기존에 다니던 산부인과가 전원을 하는 바람에 집 근처의 다른 산부인과로 옮기려 했으나, 결국 받아주는 곳을 찾지 못해 전원을 한 곳까지 매번 삼십 분가량을 차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 태동이었다. 기계의 도움 없이도 나와 아이를 직접 연결해 주는 신호말이다.




어느 날은 왼쪽에서 또 어느 날은 오른쪽에서 불쑥하며 찾아오는 태동이 늘 즐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은 태동은 마치 뱃속에 구렁이가 지나가는 것 같다는 비유가 찰떡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이 뱃속의 작은 구렁이와 친해질 수 있었다. 밥이나 단 것을 먹으면 뱃속에서 통통 구렁이가 춤을 추었고 산책을 나가서 햇볕을 쬐면 구렁이가 기지개를 켜는 듯 쓱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잠자기 전 남편과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고 있으면 꿀렁꿀렁 마치 자기도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듯 요동쳤다. 물론 매번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뱃속의 아이가 잘 있고 또 외부의 자극에 따라 반응한다는 사실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어쩔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마고치를 키우는 느낌이 들었다. 태동이 단연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아침이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이른 아침이면 아이도 기지개를 켜는 듯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잠이 깬 지 오래인데도 아이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따라가 보았다.


아이가 움직이는 대로 슬며시 움직임을 쫒다가 다시 잠에 드는 그 순간을 나는 사랑했다. 아이가 잘 있겠거니 하고 덮어두었지만 늘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던 불안감도 태동과 함께 사라졌다. 한 달 후 있을 검진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아이가 스스로 존재감을 뽐내주니 이만큼 맘이 놓이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태동에 대한 남편의 반응이었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데 마침 태동이 느껴졌다. 그러자 나는 일부러 등을 돌리고 누운 남편에게 몸을 더 밀착해 가까이 누웠다. 아직까지 나만큼 태동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한 남편에게 이 편안하고 안도감을 주는 느낌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아이도 불쑥 남편을 향해 쿵 쿵 하며 두 번 발길질을 했다.


     “으악! 이게 뭐야.”

     “봤지? 내가 말했잖아! 요즘 태동이 점점 세진다고. 어때? 너무 신기하지.”

     “으…응. 근데 좀 느낌이 이상해.”


남편은 마치 진짜로 구렁이라도 만진 것 같은 얼굴로 내 배 쪽을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등을 돌려 누웠다. 떨떠름한 남편 반응에 나는 다시 몸을 슬며시 떼고는 읽던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태평하게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일매일 다정하게 배에 배고 책을 읽어주거나 태동을 느끼면 벅차올라하는 남편의 모습은 환상이었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공돌이 남편과 십년째였다. 네가 태어나면 누구보다 커다란 사랑을 줄 사람이니 이번만은 봐주기로 하자며 아이가 방금 통통하고 친 곳을 문질러 주었다.





그러나 태동이 주는 안도감도 잠시, 간사한 사람의 마음은 여전했다. 이제는 태동이 전보다 조금 느껴지거나 한동안 느껴지지 않으면 다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아침이면 칼같이 인사를 해주던 아이인데 오늘은 왜 그러지? 아니, 이렇게 단 걸 먹었는데도 조용하다고? 갑자기 태동이 감소하거나 느껴지지 않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던데 이렇게 태평하게 있어도 되나? 이런저런 걱정에 손톱을 뜯으며 울상을 지을라치면 다시 뱃속에서 통! 하고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또 ’ 휴-‘ 하고 짧은 숨을 몰아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배 위에 손을 댄 채 혼자서 울고 웃는 모노드라마를 하루에도 몇번씩 찍고 있노라면 남편은 다가와 이렇게 얘기해주곤 했다.

     “자기야, 언젠가 네가 내게 해준 말 기억해? 아기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고 그랬잖아.”


그럼 나는 고개를 겸허한 얼굴로 반성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아이를 끝까지 믿어줘야 하는 건 바로 엄마잖아.”


하지만 그러면서도 철없는 초보 엄마인 나는 남편 몰래 뱃속을 살짝 누르는 것이었다.

‘아이야! 잘 있니? 대답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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