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기집 보이죠? 그리고 이게 난황이에요. 모두 다 좋아 보여요. 축하합니다, 임신이에요!”
초음파 기계로 들여다본 자궁 안에는 까만색 동그라미가 하나 생겨있었고 또 그 안에는 더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보통 독일사람들이 그렇듯, 축하인사를 건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은 친절했고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말은 지독히도 의례적으로도 들렸다. 진료 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어서 우리의 안전한 공간인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았다. 임신이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 몸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또 한편으론 아주 오래 기다려온 일이었다.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한 뒤 이주동안 나는 누워만 지냈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면, 숟가락에 가득 찬 물이 흘러내리듯 아이도 그렇게 흘러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꼼짝도 안 하고 죽은 듯 지내는나를 가장 신기해한 것은 남편이었다. 평소 나는 한시도 가만히 못 있어서 휴일에도 남편이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 한 시간 동안에도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식탁을 치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짬이 나면 나는 빈둥거리고 있는 남편을 흘깃거렸다. 산책을 나가자는 신호였다.
사실 삼 년 전 유산을 겪은 후 나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 내 잘못일 수도 있어.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또 그게 아닐 수도 있어!‘하며 벌어지지 않았고 상관없을 수도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말의 ‘까봐’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초음파로 아기집을 봤을 때는 왠지 모를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이번엔 내가 아기를 지켜냈다는 성취감 말이다. 하지만 그를 비웃듯 의사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산모는 적당한 운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해요. 혈액순환에도 좋고 엄마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가장 안 좋은 것은 누워만 있는 거예요! “
무리하지 말라, 안정을 취해라, 많이 먹고 누워있어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누군가 임신을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건네는 말들이다. 임신을 한 순간부터 엄마는 요새이고 아기는 그 안에 든 보물이니까. 그러나 여성의 몸은 벽돌과 철창으로 닫힌 요새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명이고 살아있는 요람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적당한 활동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임산부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가끔 사람들의 오랜 고정관념을 깨는 데엔 짧은 말 한마디가 충분할 때가 있다. 진료를 마친 후 의사가 내게 해준 말처럼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에 앉으며 한참을 혼자서 무언가를 컴퓨터에 적고는 다시 나는 향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임신은 질병이 아니에요(Schwangerschaft ist keine Krankenheit).”
나중에 독일 임신 정보를 알아보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말을 들었던 한국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금발 머리를 질끈 동여묵은 의사는 내 또래로 보였다. 운동을 해도 되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 눈을 지긋히 응시하며 단호하게 ‘Ja(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한마디는 내 임신기간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가 임신한 자신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자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입덧이 진정되던 14주 무렵부터 구석에 접어 놓았던 요가매트를 다시 펴기 시작했다. 아이를 만나게 된 임신 38주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이어나갔다. 물론 강아지와도 매일 산책을 나갔다. 우리 셋은 매일 함께 산책을 하며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이 변하는 것을 함께 느꼈다. 그렇게 아이는 가끔은 천천히 또 가끔은 빠르게 흐르는 엄마의 호흡을 들으며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