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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Jan 25. 2021

J - Juckreiz (가려움)

대학원 지원이라는 산을 오르며

EP. 10

J - Juckreiz (가려움)



 짧은 고향방문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독일에는 꽃이 피고 있었다. 시내에 새로 얻은 집에는  개의 방과 작은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딸려있다. 집은 전에 살던 독일 기숙사 캄피에리처럼 일자형 구조였고, 집안의 모든 창문은 남쪽을 향해있다. 봄이 옴과 함께 집안으로 비추는 햇살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평짜리 부엌에는 전주인이 남기고  아이들 소꿉놀이용 장난감 같은 연노란색 부엌 수납장이 한쪽을 차지했고 반대편에는 남자 친구 부모님이 주신 낡은 원목 식탁과 한국에서 엄마가 사준 빨간색 압력밥솥이 놓인 선반 그리고 남자 친구의 첫 월급으로 장만한 냉장고가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식탁 위에 대학 신청 서류들을 늘어놓고 뚫어지게 쳐다보고 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장과 성적표

수능 성적표

인턴십 수료증

독일 어학 증명서 한 장

영어 성적 증명서 한 장

...   


창을 통해 들어 햇살이 마치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처럼 지나온 나의 인생을 증명해주는 서류를 비스듬히 비추었다. 지난  년간의 독일에서의 시간은 '독일 어학 증명서' 되어버렸고 한국에서의  달은 '영어 성적 증명서' 남았다. , 인턴을 하며 보냈던 1  시간은 3개의 인턴십 수료증으로, 12년간의 학창 생활과 4년간의 대학 생활은 각각  장의 졸업장으로 남게 되었다. 이 사회에서 졸업장, 성적표, 증명서 그리고 수료증 따위의 서류 없이 나를 증명할 는 있을까. 어떤 때에는 출입증이,  다른 때에는 신분증명서가 되어주는  서류들이 사실은  인생의 주인공  아닐까? 머릿속은 이런저런 상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지만, 나의 눈과 손은 마치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듯해야  일을 계속했다.  다른  장의 서류를 위해 다시 달려가야  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원하는 독일의 대학원은, 지금 지내는 비스바덴(Wiesbaden)   그리고 쾰른(Köln) 뒤셀도르프(Düsseldorf) 각각  곳씩 총 모두  곳이었다. 그리고 그중엔 학교나 학과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학교도 있었고, 면접을 보는 학교도 있었다. 그중 쾰른과 뒤셀도르프에 있는 대학들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모두 요구했다. 지원 요강을 확인하자마자 대학교 시절 만들어 놓았던 한국어 포트폴리오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안의 내용을 독일어로 프레젠테이션   있게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과정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보다  많은 독일어를 배우게 되었다. 이제는 독일어가 목적이 아닌 수단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대학 공부를 하려는 학생은 당연히 독일어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과정에서도  점은 분명히   있었다. 모집 대상이 외국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학 지원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독일어로 되어있었다. 어학원에서 배운 독일어는 간단한 안내문이나 사설 혹은 신문 기사를 읽을  있게  주었지만, 대학교 지원 요강이나 필요 서류에 대한 안내를 읽는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서류는  있었는데, 바로 Lebenslauf 불리는 자기소개서였다. 분명 독일어 작문을 배웠지만, 자기소개서 작성은  다른 이야기였다.


독일은 문서 작성에 있어서 형식에 굉장히 엄격하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문체의 사용과 맞춤법 그리고  간격, 글자 크기, 정렬의 방향 심지어 기호의 쓰임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문서 작성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로 단번에 걸러지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소개서 작성은 국적을 불문하고 어려운 일이다.  장의 종이 안에 내가 살아온 , 받았던 학업 그리고  안에서 내가 성장한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을 담아내는 일이 쉬울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처음 진지하게 작성하는 자기소개서였다.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충분한 사전 조사를    문장  문장 공을 들여 공백을 채워나갔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완성된 글을 보니 참고했던 예시들에 비해 빠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름대로 완성한 자기소개서를 처음 남자 친구에게 보여주었을  나는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 그에게 교정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의 자기소개서가 빨간색 펜으로 처참히 난도질당해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거랑 저거는 맞춤법 틀린 거야. 그리고 여기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들어가야지. 이거 띄어쓰기는 뭐야? 이유가 있는 거야? 아니면 이렇게 하면 안 돼."


하지만 그의 잔소리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나도 이런 문서 작성할 때는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제출하기 전까지 점검해. 이런 상태로 제출하면 나라도  서류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바로 탈락시킬 걸?."




 그로부터 대략   후에 드디어 독일에      만에 대학원 진학을 위한 서류를 모두 제출할  있었다. 하얀색 서류 봉투에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넣어 우체통에 넣을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성취감 같은 것도 몰려왔다. 정해진 기간 내에 모든 문서를 준비해서 제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뿌듯함도 아주 잠시, 수많은   목록   가지를 체크하려던 터에 문제가 생겼다. 대학교의 신청 기간 마감이 다가오도록, 내가 보낸 문서의 행방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종합 지원 포탈의 상태란은 바뀌지 않았고, 우편을 보낸 지는 이미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우편을 보내도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게다가 한국이었다면 전화  번으로 확인할 수도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서 해결할  있을 거라는 희망은 내게 더는 없었다. 결국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린 후 받은 답장은 예상보다 훨씬 짧았다.


"Sie müssen zuertst Geduld lernen. (당신은 먼저 인내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겠네요.)"


그리고 이것이 당시 내가 받은 회신 내용의 거의 전부였다. 냉기를 가득 품은 지원 담당자의 메일을 받자마자 독일에서 지내면서 이해하고, 인내하고, 참고 견뎌야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동안은 '그래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랬지' 또는 '악법도 법이라지' 하며 독일의 불편한 부분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한창 지원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그래도 지원 담당자에게 안내를 가장한 비꼼이 섞인 답장을 받으니 화가 치솟.  물론 그렇다고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득달같이 따지지는 않았다. 화가  거지 멍청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낱 외국인 지원자가 항의를 해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는 것을 지난  년동안 독일에서의 삶을 통해 익히 깨달은 후였다.


다시  후로 일주일 , 지원 마감이 정말 삼일 앞으로 다가와서야 지원 사이트의 상태란이 바뀌었다. 기다리는 동안 면접 준비로 바쁘긴 했지만 하루에도  번씩 들어가 보았던 터라, 바뀐 상태란을 바로 확인할  있었다.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같았다. 마른 하품을 하며 노트북을 닫으려 하는 순간, 갑자기 양팔이 미친 듯이 가려웠다. 소매를 걷어보니 양팔은 두드러기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두드러기였다. 머리로 아무리 참으려 해도 몸은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듯, 두드러기는 모든 서류 접수를 마치고   돌릴  있을 때가 되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깐깐한 나라의 사람들과 시스템 사이에서 가려움을 참으며 대학원 지원의 오부 능선을 넘었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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