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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Feb 01. 2021

K - Komödie (희극)

독일어 데뷔전을 치르다

 

EP. 11

K - Komödie (희극)



 6월 초의 한여름, 정원이 40명인 이 층 관광버스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창문은 만원 버스의 열기에 뿌옇게 숨이 맺혀 축축했고 버스 안 공기는 승객들이 틈날 때마다 꺼내 먹은 음식 냄새로 텁텁해져 있었다. 모든 좌석이 삼등칸 선실같이 열악한 그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옆자리는 최악의 선택지였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는 근처에 앉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두 좌석 앞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의 신경도 거슬릴 정도였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은 예정대로였으면 15분 정도였으나, 휴가철이 다가오는 초여름의 고속도로는 벌써부터 자동차와 캠핑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앞 좌석에는 갓난아기를 대동한 어린 부부가 타고 있었다. 저렇게 오래 울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내가 도착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일밖에 없었다.


'푸 - 하!'

상쾌한 바깥공기가 폐 안을 충분히 씻어낼 때까지 심호흡하고 나니 그제야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승객들을 토해낸 곳에는 독일 대도시의 중앙역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Düsseldorf Hauptbahnhof/뒤셀도르프 중앙역>

그렇다. 두 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려온 곳은 독일에서 패션산업과 예술로 저명한 도시 뒤셀도르프였다. 초여름 오후의 청명한 풍경이 맑은 하늘 아래 펼쳐져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역사명이 굵은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버스가 승객들을 내려준 곳은 회색 보도블록이 깔린 넓은 인도였고 옮기는 시선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게 머물러있었다.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는 낡은 주상복합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상가들이 입주한 1층에는 저마다 먼지 낀 간판들이 달려있었다. 정류장은 중앙역으로부터 3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역사에 가까워질수록 더 큰 중력을 받는 것처럼 더 빠른 걸음으로 역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중앙역을 실제보다 더 멀게 느끼게 했다. 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낮고 넓은 뒤셀도르프 중앙역 건물은 햇빛 아래에서는 공장처럼, 그늘에서는 낡은 교도소처럼 보였다. 아귀의 입처럼 길고 넓게 생긴 역사의 중앙출입문에서는 입안의 바닷속 모래를 뱉어내듯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시 빨려 들어가곤 했다.




 대학원 서류 접수를 마치고, 초조하게    정도를 기다린 끝에 나에게는  개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각각 뒤셀도르프와 쾰른의 예술대학교에서  것이었는데,  안에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안에는 서류를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이 적혀있었는데, 면접 일자는 우연히도 하루를 차이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 뒤셀도르프와 쾰른은 기차로 3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웃 도시이다. 물론 이틀에 걸쳐서 면접을 봐야 했기에, 나는 어쩔  없이 뒤셀도르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계획에 없던 면접 여행의 일정을 짜느라 골몰하던 나에게 남자 친구는 동행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남자 친구는 지금으로부터    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원한 회사에 바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십은 수없이 해왔던 그였지만, 정식 직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일에서는 보통 면접 합격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수습 기간에 좋은 평가를 받으면, 회사에 따라 정직원으로 일을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올해  반년여 간의 수습 기간을 무사히 넘기고 정직원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받던 남자 친구 오랜만에 집을 떠나 새로운 도시도 둘러보고 외식도   있는 기회라며 들떠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속버스 탑승권과 중앙역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편지를 받자마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주어진 2주 동안 나는 성실하게 면접 준비를 했다. 한국에서 대외활동이나 인턴십 면접을 봤던 기억을 살려, 면접 때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그 안의 내용을 숙지한 후 예상 질문을 독일어로 뽑아서 정리했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면접의 이유가 분명하니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간절했다. 독일어 어학이라는 큰 산을 넘어 서류 접수 그리고 이제 마지막 면접이 왔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서둘러 독일어 어학 과정을 마친 보람도 없이 꼬박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했다.


'내가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했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대학원에서 하고 싶으며 이 대학원을 지원한 이유는 어떠하다.'


대본의  줄기를 이렇게 잡아놓고, 면접  예상 가능한 질문과 답변을 뽑아놓고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처럼 그것을 날마다 중얼거. 혹여 면접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일부러 독일 교수들의 인터뷰나 강의 영상을 아도 보았다. 물론 교수라고 같은 말투와 억양을 갖고 있을 리는 없었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게 나름 체계적으로 면접 준비를 하며 다가오는 디데이(D-Day) 기다리고 있었지만, 면접 준비가 완벽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이유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배운   년이  되지 않은 독일어로 면접이 이루어진다는 것과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알맞은 면접 의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없다는   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미 물은 엎어진 후였고, 나는 그저 시야가 제한된 경주용 말처럼 면접일을 향해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남자 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노트북과 포트폴리오  면접용 물건들이 담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미리 알아둔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학교는 뒤셀도르프 호흐슐레(Düsseldorf Hochschule)였다. 내가 지원한 학과는 사진 석사 과정이었지만, 사실 나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배운  혹은 실무를 경험한  또한 없었다. 그러우연히 지난번 독일 교환학생 시절에 사진 수업을 접하게 되었고,   한국에서 전공 교수님의 권유로 주로 제품이나 공간 디자인으로 졸업전시회를 하는 산업디자인과에서 '사진'으로 졸업 전시를   있었다.   독일에서도 틈날 때마다 사진을 찍기는 했으나, 독일어 공부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난  오래였고 카메라는 대부분 서랍장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지원을 하게 되었던 이유는 사진에서는  어딘가 설명할  없는 매력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실에서의 필요성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해보고 싶은 오랜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지원할 학교를 찾다가 뒤셀도르프에서 사진 석사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번 시도나 해보자며 접수했던 서류가 통과돼서 면접까지 보게  것이다.


면접 시간보다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학교를 둘러볼  있었다. 초록색 잔디와 조금은 낡아 보이지만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이  어우러진 캠퍼스에는 마패(독일어로 Mappe 직역하면 서류철이나 서류 파일을 의미하지만, 독일에서는 주로 '포트폴리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 한쪽에 끼고 교정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학생들에게서는 어쩐지 설렘과 반항의 기운이 오묘하게 섞여있었. 주변에 매점이라도 있나 하며 교정을 어슬렁거리는데, 발걸음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유독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하얀색 얇은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정장 치마 그리고 같은 색의 5cm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이 표준 면접 복장처럼 여겨지는 한국이었으면, 조금  차분한 색깔의 옷을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독일에서는 딱히 엄격하게 정해진 색은 없는 듯했다. 인터넷에서는, '직종에 맞게 단정하게' 입으라는 조언이 최선이었다. 혹시나 해서 사진 검색을 해보아도, 주로 정장 차림의 옷이 주를 이루었으나,  색깔은 낙타색, 목련색, 흰색, 파란색 그리고 검은색 등으로 한국보다는  다양했다. 따라서 나름 사전 조사를 통해 옷장에서 가장 격식에 맞는 옷을 꺼내 입은 것이었기에, 시선의 이유가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인가하는 마음에 불쾌해졌다. 하지만 이내 ',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하는 마음으로 다시 터벅터벅 면접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면접 시간이 다가오자, 모임 장소인 2 대기실은 점차 면접을 보러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옷차림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흰색에 목이 달라붙는 반소매 티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고 나타난 지원자가 있는가 하면 피부 위의 문양이 옷이나 가방보다 많은 지원자도 있었다. 눈썹과  그리고 입까지 골고루 피어싱을 달고 있던  이십  초반의 지원자는 분홍색 단발머리를 높이 올려 묵은  무심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캠퍼스에서 나를 신기한  쳐다보던 사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른손에는 서류철을 들고 곱슬머리를 묶은 조교는 그날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치러지는 면접의  번째 날로서, A부터 L까지의 성을 갖은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기로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한국 성씨들은 Kim, Lee, Pak, Jung 등은 보통 알파벳  순서이기 때문에, 바로 면접을 보게   알았던 나는  시간 정도를 그곳에서 꼼짝없이 기다리게 되었다. 대략 사십  정도의 지원자들이 대기하던 곳은 평소에 학생휴게실로 쓰이는 듯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몇몇 재학생들은 휴게실을 방문했다가는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지원자들의 분위기에 방안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가곤 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처럼  차례의 지원자들은 서로 안면을 트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가장 눈에 띄던 지원자는 수많은 피어싱을 달고 힙합 음악을 크게 듣고 있던 여자도, 매끈한 정장에 조끼까지 맞춰 입고   대학교를 졸업한 듯한 풋내기 남학생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유일한 동양인 지원자인 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였다. 몇몇 학생들은 내가 무슨 공부를 했는지, 독일에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어보기도 했고, 나의 포트폴리오를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나의 바로 앞번호였던 지원자는  키에 호리호리한 몸에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갖은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새침한 첫인상에 비해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갖고 있었는데, 유독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때까지, 나에게 격려의 인사를 잊지 않았고 나중에는 자신은 이미 다른 학교 면접을 보고 왔다며 나름의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조언을 들으며 속으로 '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심 지루한 대기시간을 견딜  있는 말동무가 생겨 기쁘기도 했다.


유독 더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속한 성의 이니셜이 불리고 순서가 돌아오자 우리는 다섯 명씩 짝을 지어 휴게실 아래에 위치한 면접장 밖의 복도로 안내되었다. 3m 족히 넘는 철문을 앞에  복도에는 수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유약 냄새가 연하게 겨왔. 나에게 조언을 해주던 여학생은 전보다는 차분해진 분위기에 상기된 볼을 하고 철문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윙크를 하며 건투를 빌고는 “다음에 다시 보게 되기를 바라!” 하며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들어간 그곳에는, 차갑고 어두웠던 복도와는 다르게 환한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평소 강의실로 쓰이는 듯한 작은 강당 같은 방에는 여섯 명의 교수진들이  줄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유리문이 있었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경사가 위층까지 이어지는 작은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익숙해지자 교수들의 모습은 검은 그림자에서 차차 밝은 형상으로 눈에 들어왔다. 가장 중앙에 앉아있던 나이가 지긋한 남자 교수는 자신과 동료들을 자신감 넘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소개했다. 면접용 책상과 의자를 제외하고는 깨끗이 정리된 넓은 강의실의 공백에서는 은은하게 메아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소개를 받은 교수와 조교는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잠시 관찰한 후에는 나의 지원서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소개를 마친 나에게 한 교수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물을 한잔 건넸다.  그래도 매우 긴장해있던 터에 기다리는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나는 사양하지 않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하지만 물을 넘기는  순간에도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이내  잔을  비우지 못하고 입을 어야만 했다.


줄곧 연습한 자기소개를   없이 마치자, 교수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내심 나와 의사소통을 제대로   있을까 걱정이라도 했는지, 그들은 나에게 “독일어를 언제부터 배웠어요?” “독일어를 잘하네요!” 하며 칭찬의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 인사를 건넬 때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질문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대화 중간에 끼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례하다기보다는 그저 독일인들 사이에서 나누는 평소의 대화처럼 보였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마치 그들의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마냥 적절해 보이는 때에는 거나 침묵했다. 하지만 6명의 교수는 모두 지원자인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침묵과 웃음으로 때울  없는 선에서 최대한 준비해온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예상했던 질문에는 준비했던 것처럼 당당하고 완벽한 문장으로 답할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듣도 보도 못한 질문이 나올 때면 식은땀이 얇은 블라우스를 타고 주룩 흐르는 듯했다. 게다가 가장  장애물은, 그동안 앵커나 녹음된 교육용 표준 독일어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억양과 말의 속도가 제각각인 교수들의 질문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대답하는 도중에 스스로 엉뚱한 이야기를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마치 스스로 멈출  없는 태엽 인형처럼 느껴졌다. 교수들은 이내 전과 다르게 샐쭉한 표정을 하거나 나의 얼굴 대신 지원 서류와 포트폴리오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대사를 잊어버려 엉뚱한 말을 지껄이는 배우를 햇빛이 조명처럼 비추고,  앞에는 교수들의 그림자가 관객처럼 앉아서 곤란한 배우를 외면하듯 침묵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얼어가는 것이 느껴지자 나는 당장이라도 어린아이 같이 울면서  장소를 도망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준비해   장의 인화된  서른 장의 사진들을 책상에 꺼내놓기 시작했다. 결심한  남은 잔의 물을 모두 입에 털어놓고는 멀리 있는 교수도    있게 사진을 넓게 펼치며 그중  장의 사진을 골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진과 교수라고 해도, 나만큼 나의 사진에 대해서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교수들의 시선과 관심이 나를 향하자, 나는 다시 처음 자기소개를  때처럼 자신감을 얻었다. 자잘한 단어나 문법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메시지 전달에만 집중하며 내가 사진을 좋아하고 앞으로 배우고자 하는 이유 따위를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마치고 교수들이 당돌한 지원자가 넓게 펼쳐놓은 사진을 별말 없이 관찰하고 있을 때쯤, 곱슬머리 조교가 다시 들어와 면접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들은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낮춰가면서 하는 말은 알아듣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그럴 노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기력이 다 빠진 상태였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이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기분이 들었다. 약 이 분여 간 조용하게 논의하던 그들은, 다시 내 쪽을 돌아보며 의자를 바로 했다.


"Sie sind dabei!(당신은 합격했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교수진들은 나에게 면접에 합격했음을 바로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사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감각이 있다는 말로 칭찬을 해주더니, 서류 검토를 마지막을 다시 해야 하지만 꼭 강의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면접이 끝난  캠퍼스를 벗어날 때는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긴장감이 넘치던 면접장에 비해 교정은 평화로웠다.  전까지 극적인 상황에 부닥쳐있던 터라, 면접장 밖의 나른한 여름 날씨가 포근하게 온몸을 감싸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면접장 안과 밖은 마치 어두운 극장에 있다 밖으로 나온 듯이 분명한 명암 대비를 보여주었다. 잠시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에 젖어있던 셔츠도 시원한 바람에 다시 사박사박 마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구두 안에 갇혀있던 발에서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면접에 합격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호텔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앉아 횡설수설 지껄였던 나의 말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머릿속을 댕댕 울리며 선명히 기억나는 말들도 있었고,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도 있었다. 어쩌면 잠시 꿈을  것도 같았다. 핸드폰을 켜자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이 차례로 알람을 울렸다. 면접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리며 쫄쫄 굶고 있는 그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이 와있었다. 그제야 나의 배꼽시계도 늦은 알람을 울렸다. 그제야 허기가 몰려오며 모든 것이 다시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홀로 쾰른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미팅이 있는 남자 친구는 호텔에서 일하며 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초행길 면접 시간에 늦지 않으려 아침부터 어제와 같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여유로운 마음은 어제와 달랐다. 어제 면접에서 대다수의 독일인에게 독일어로 내 생각을 전하고, 설득시킨 경험을 처음 해봤던 터라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쾰른 중앙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학교는 꽤 최근에 생긴듯한 사립학교였다. 재학생으로 보이는 바삐 걷는 사람들은 길에 멀뚱히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는 내 옆을 무심하게 지나쳐갔다. 하지만 이미 데뷔전은 치른 후였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배짱이 생겼다. '그래, 모든 건 역시 기백 이랬어.'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나는 다시 두 번째 면접장을 들어섰다.


'띵-동!'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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