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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Jul 13. 2021

Ö - Ökologie (생태계)

독일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의 생태계 그리고 관용의 중요성


#1

독일 대학원에서 만난 학생들과 한국 대학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과의 차이점은 <성적 경쟁>에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취업을 위해 기업에 제출하는 졸업증명서에는 본인이 수료한 과목과 학점이 기재되어 있고, 이것은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주로 상대평가로 학점이 주어지는 한국에 비해, 독일에서는 미리 정해진 학업 수행 기준에 따라 <절대 평가>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 반의 누구보다 또는 내 옆에 앉은 누구보다 시험을 잘 치러야 나의 학점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원하는 기준에 충족하느냐가 성적 평가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업이 끝나면 샐쭉한 얼굴로 눈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독일 학생들도, 막상 어려운 문제나 과제에 대해 물어보면 자신의 노트를 보여주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물어보는 이를 붙잡고 시간을 들여 문제를 설명해주느니 본인의 필기를 이메일로 보내주는 편이 그들에겐 편했으리라.


그러나 독일에서 대학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낯선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내가 가장 놀라게 된 것은 바로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태도였다. 한반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다양한 ‘미드’와 ‘영드’ 그리고 영화를 통해 한 간접경험으로 나는 외국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외국 캠퍼스를 거리는 학생들의 격식 없는 옷차림, 수업 시간에 교수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등 외국에서의 대학생활에 대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 따위는 이미 나의 머리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했던 <외국 선행학습>이 실제로 도움이 된 적도 많았다. 학생들은 굉장히 다채로운 - 예를 들면, 산타 할아버지만큼 길게 수염을 느러뜨린, 종아리를 가득 덮은 타투가 잘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은, 슬리퍼 차림에 한 손에는 맥북만 달랑 들고 오는, 하드락 공연에 어울릴 법한 눈 화장을 한, 방금 체육관에 다녀온 듯 온몸에 꽉 붙는 운동복을 입은 - 모습으로 강의실에 나타났다. 물론, 평범한 모습으로 강의실에 나타나는 학생들이 다수긴 했다. 그중 삼 학기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B는 평생 화장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이것이 나에게는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내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무렵엔 대부분의 여학우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오면 남학우들로부터 조롱 섞인 농담을 듣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므로 B가 만 스물셋이 되도록 그녀 스스로 원치 않는 화장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경험한 한국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일탈로 비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외면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관용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이 상상을 훌쩍 넘길 때가 있다. 마치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처럼 태연히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강의를 듣는 학생을 보았을 때는 말 그대로 내 눈을 의심했다. 물론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냄새나 소리가 심하게 나지 않는 음식을 먹었지만, 한국에서는 초콜릿이나 껌 등 간단한 간식류도 교수의 눈치를 보며 몰래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대학원에서는 오히려 교수가 수업 전이나 쉬는 시간 음식을 미처 다 먹지 못한 학생에게 “천천히 먹어라”며 배려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독일의 학교가 관용의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대학원 과정의 절반이 지날 무렵엔 이런 일도 있었다.




#2

돌이켜보면, 대학원 친구들을 처음 만난 오리엔테이션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관찰하기 좋은 기회였다. 보통의 경우 첫 만남에서 대부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친분을 쌓으려고 하는 이들과 남들이 말 걸어 주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이들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그러나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이들에겐 친절하지만 그것은 사실 다른 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마치 그들은 직장인들처럼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의 사무적인 친분만 쌓는 것이다.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처음에는 평소처럼 내심 남들이 말 걸어 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빠르게 내뱉어지는 독일어에 잠시 넋이 나간 사이 다른 학생들은 이미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 K였다.


오리엔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바로 직전 교실에 들어온 K는 딱 봐도 세 가지 타입 중 마지막 유형처럼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의 빈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냉담해 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이상하게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무리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어쩐지 그녀는 쿨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조심히 손짓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손짓 이후로 그녀와 나는 모든 수업시간에 서로의 옆자리를 맡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로 이주가 지나고 어느 쉬는 시간, 그녀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실 나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 임신을 했어. M 교수랑 상담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마 이번 학기는 그대로 다녀도 다음 학기엔 학교에 거의 안 나올 것 같아.”


물론 대학원에서 옆자리를 맡아주는 것이 비밀 이야기까지 터놓는 사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아마 자신에게 점점 정을 붙이는 나를 눈치챈 듯했다. M 교수와의 상담 이후 그녀는 첫 학기에는 절반의, 두 번째 학기에는 일부의 수업에만 참석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나의 옆자리에 그녀가 앉는 날이 줄어갔지만, 그녀가 수업에 참석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녀의 자리를 맡아주곤 했다.


그렇게 이학기가 되자, K가 학교에 오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다. 2학기 과목 중에는 학기 중 단 하루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봐야 하는 과목이 있었다. 그 과목을 맡은 교수 W은 학기가 시작된 후 강의계획표에만 존재했는데, 소문으로는 그녀는 독일에서 저명한 전공 서적을 다수 집필하고 다양한 기업들을 컨설팅해 학문 분야, 실무 따질 것 없이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명성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왔기에 그저 이런 기괴한 커리큘럼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한 뒤 세 달이 지나고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가 돼서야, 시간표에 W 교수의 이름이 등장했다. 계획된 수업시간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시간이었다. 이마저도 교수의 스케줄에 맞춰 짜인 듯 보였다. 이른 아침 강의실로 들어서자, 아직 W 교수가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강의실은 그녀를 어느 유명 세미나에서 봤다는 선망이 가득 담긴 목격담부터 작년에 같은 수업을 들었다는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까칠한 성격에 대한 괴담까지 그녀의 대한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약속된 수업시간이 되고 교실 안의 시계가 정각을 가르치자마자 살짝 열린 강의실 문 사이로 복도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들려왔다. 구두 소리의 주인은 W교수였다. 그러나 W 교수가 강단 앞에 서자 구두 소리 대신 각 잡힌 새빨간 코트가 학생들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코트의 색깔은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색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자, 여러분. W교수님이 어려운 시간을 내서 강의를 하러 와주셨어요.”


먼저 입을 연 것은 W교수가 아닌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전임교수 M이었다. 압도적인 W교수의 존재감에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들이 M 교수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을 보지 못 한 듯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서 두리번거려야 했다. 그는 W교수의 소개를 짧게 마치고, 늘 그렇듯 바쁜 일이 있는지 허둥지둥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전임 교수 M이 다른 교수의 수업 시간에 함께 들어온 것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단지 교수를 소개하고 사라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W교수는 짧은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다짜고짜 본인이 수업 중 원치 않는 것과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내가 교수들의 독일어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때는 아니었지만, 한마디 한마디 강조해서 내뱉는 그녀의 요구 사항은 똑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질문 시간 이외에는 수업을 끊지 말 것, 잡담이나 딴짓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수업 중 음식을 먹지 말 것’이 그녀의 요구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얼음장 같던 그녀의 얼굴 위에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평소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학생들이 이렇게 조용히 교수의 말에 집중을 하다니! 마치 한국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얼마 가지 않아 수업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실례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K가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W교수는 자신의 수업이 중단된 것이 거슬린다는 것을 표정에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는 헐레벌떡 들어오는 K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강의자료만을 쳐다보았다. K 또한 W교수의 얼굴을 잠시 슬쩍 쳐다보고는 내가 있는 곳을 살폈다. 손짓을 할 필요도 없이 K는 나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교실 맨 앞자리, 그것도 교수의 강단 바로 앞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K는 이미 학생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는 의자와 책상 사이를 힘겹게 가로질러 내가 있는 곳으로 넘어와서는 나의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만삭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배는 그녀의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제법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점차 불러오는 그녀의 배와 함께 K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학생은 없게 되었다. K가 자리에 앉고 교실이 다시 교수가 원하던 만큼의 고요를 찾자 W교수는 새로 온 학생 쪽을 흘깃 쳐다보고는 지체 없이 강의를 이어갔다.


불화의 씨앗이 움튼 것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였다. K가 평소처럼 노트와 함께 음식을 꺼낸 것이었다. 그때 나는 유독 수업에 집중해 있었는데, 평소 다소 소란스러운 학생들 때문에 교수의 말을 이해하는데 힘들었던 터에 그날의 수업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서 들려오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K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책상 위에는 분홍색 도시락통에 들어있는 쿠킹포일에 정성껏 쌓인 샌드위치가 놓여있었다. 불행히도 늦게 수업에 들어온 K는 유명인사의 경고를 듣지 못한 터였고 그녀는 평소처럼 서두르다 하지 못한 아침식사를 하려 했던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K는 당황해하는 나를 태평하게 쳐다보았다. 치즈가 든 호밀빵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문 K를 어떻게 저지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W교수가 수업을 중단하고 K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거기 늦게 온 학생, 수업 중엔 음식을 먹지 마세요.”


교실의 절반은 K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머지 절반은 교수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교수를 조심히 올려다보았다. 화가 난 목소리와 달리 W 교수는 어딘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장 의외였던 것은 K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바로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도시락 통을 닫힌 했으나, 한편으론 어딘가 크게 개의치 않는 듯도 보였기 때문이다. W 교수는 K에게는 짧은 말로 주의를 주는 것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바로 수업을 시작하는 대신 교실에 있는 학생 전체를 향해 설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설교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한 학기 분량의 수업 내용을 오늘 모두 끝내기 위해서는 그 아무리 유명한 W교수라도 부지런하게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교실에는 W교수의 목소리와 이따금씩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한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 외에는 다른 어떤 소리도 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십분 앞으로 다가오자 슬슬 집중력이 떨어진 나는 무의식 중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와 같이 앞줄에 앉은 학생들은 아직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지만 뒤쪽에서는 마치 내 엉덩이를 근질거리는 벼룩이 옮겨 붙은 듯 연달아 학생들이 의자를 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들처럼 독일어를 다 알아들으면 수업이 더 재밌을까? 아님 오히려 더 괴로울까?’ 공상을 하며 오른쪽을 바라보려는데, K의 손이 슬금슬금 노트를 벗어나 도시락통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했다. 사람이 급작스레 당황스러운 일을 목격하면, 순간 할 말을 잊는다고들 한다. ‘설마 저걸 입에 넣으려는 것은 아니겠지?’하는 생각과 ‘내가 말려봤자 여기 애들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데, 오지랖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그저 오른쪽에 앉은 K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K는 W교수가 칠판 쪽으로 등을 돌리는 순간, 이내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을 기다린 샌드위치 한입을 베어 물었다.


하지만 K는 성급했고 운 또한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가 샌드위치에서 입을 채 떼기도 전에, W교수와 눈을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때는 언제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첫째로는 상대가 자신과 동등한 위치 또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가 막상 상사 앞에 서거나, 엄한 부모님 앞 또는 자주 마주치게 되는 대학 선배의 앞에서는 어쩐지 쉽게 조절되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수업 중 음식을 먹는 이가 K와 같은 학생이 아닌 동료 교수였다면 어땠을까? 둘째로는 어떤 규칙을 어겼을 때보다는 본인의 자아(Ego)가 공격받았다고 느낄 때이다. W교수는 분명히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이 분명히 경고를 주었음에도 K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그녀는 K가 규칙을 어겼다기보다는,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때이다. 물론, 우리는 겉으로 나타나는 다른 이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나 상황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다’라는 말에서 ‘헤아리다’는 ‘혬가림’이라는 옛말에서 왔다고 한다. 혬가림은 깊은 생각을 의미하는 ‘혜다’와 고르고 가려내다를 뜻하는 ‘가리다’의 합성어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게 생각한 후 그중에서 옳은 생각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K의 만삭에 가까운 배는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러나 너무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W교수는 한 학기에 겨우 한번, 그것도 본인의 스케줄에 따라 수업을 하러 왔고 그녀에게 그것을 눈치챌 여유는 없어 보였다.


창문 밖 바람소리는 잠잠해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교실 안 쩌렁쩌렁 울리는 W교수의 고함은 더욱더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벼락처럼 들렸다. W교수가 서있는 강단과 나와 K가 앉은 강의실 안 가장 앞자리는 2M도 안 되는 좁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서로의 미세한 표정이 다 보이는 거리이다. 분노에 가득 차 K를 향해 소리 지르는 W교수의 얼굴은 그녀가 입고 온 코트처럼 붉게 변했다. 그녀의 낯빛은 타오르는 불덩이 같았다가도 한겨울 동상에 걸린 사람의 피부색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화를 쏟아내는 W교수는 어딘가 괴로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독일어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고함은 K가 변명을 하기 위해 입술을 옴짝달싹 하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K는 <임신>, <당뇨> 등의 단어들을 간신히 내뱉었지만 그것을 W교수가 알아듣지 못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 밖 복도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W교수 얼굴은 악몽에서 깬 사람처럼 창백한 낯빛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그 변화가 빨랐던지 마치 순식간에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 같았다.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삼십 분 후에 다시 시작합니다. 늦지 마세요.”


교수가 강의실을 나가자마자 주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몇몇은 안도의 숨을 몰아 내쉬었고,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차기도 했다. 나는 재빨리 K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실 쉬는 시간이 됨으로써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은 그녀였으리라. 자신의 실수가 가져올 엄청난 소란을 예견하지 못했을 테니까. K가 임신했다는 것을 아는 학생들은 그녀에게로 와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K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하기론 저번 주 임신성 당뇨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오늘 급히 나오느라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K는 내게 했던 그 말을 그대로 W교수를 찾아가 말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처럼 한번 차가워진 수업 분위기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하지만 W교수의 수업 초반 의기양양한 태도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지난해 수업 자료를 참고’하라는 말이 수업 뒷부분에 그녀가 한 말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예정된 수업 시간을 삼십 분을 남겨두고 W교수는 들어올 때보다 훨씬 지친 얼굴로 강의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날은 K의 출산 전 마지막 수업이었다. 세 번째 학기에 그녀는 휴학을 했고 내가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W교수의 수업 날부터 일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K는 남자 친구와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왔다. 우리는 캠퍼스 안 학생식당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와 나는 W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이제 막 복학을 했는데, 출산 후 일 년간 자신이 주로 아이를 돌봤으니 이제 남자 친구가 아이를 주로 돌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 또한 학생이었기에 이번에 휴학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윗옷을 살짝 끌어내려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곧이어 약속이 있었던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식당을 나서면서 뒤돌아 본 그들은 서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3

Was ist Toleranz? Sie ist Menschlichkeit überhaupt. Wir sind alle gemacht aus Schwächen und Fehlern; darum sei erstes Naturgesetz, daß wir uns wechselseitig unsere Dummheiten verzeihen.


관용이란 무엇인가? 관용이란 인간성 그 자체이다. 우리는 모두 결점과 실수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우둔함을 용서해야 함은 마치 자연의 이치와 같이 자명하다.


Der menschlichen Gattung schlimmstes Übel ist die Zwietracht, und deren alleriniges Heilmittel ist die Toleranz.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가장 큰 해악은 불화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는 ‘관용’이다.


- 볼테르, <관용론> -




내가 독일 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다양해서 단 한 가지의 명제 또는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독일 그리고 지구 상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한 민족의 구성원의 절대적 다수를 이루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인구의 절반이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국적과 출신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독일을 방문한 사람은 알 것이다. 독일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팔천 삼백만 명이 한반도보다 세배 넓은 나라에서 인구의 절반이 이민 배경을 갖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독일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물론 이곳에서도 문제는 항상 일어난다.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여전히 불협화음과 불화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차이>에서 야기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종은 차이로 인해 그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며 차이를 통해 건강한 결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관용>이다. 인간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 우리의 인간성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독일 대학원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관찰하며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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