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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Dec 06. 202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까?

위아래 없는 독일의 나이 문화

독일에서 지내면서 잊고 사는 것 중 하나는 단연 ‘나이’이다. 우선 새해가 오면 전 국민이 동시에 떡국과 함께 나이를 먹는 한국과 다르게 독일에서는 자신의 생일날이 지나면 한 살을 먹게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갑으로 지냈던 친구와 이제는 몇 개월을 사이에 두고 나이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잊고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말을 트게 될 때부터 서로의 탄생연도를 공유하지 않으면 관계를 정립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공손하게 대화를 하던 사람도 “근데 혹시…몇 살이세요?”라는 질문 뒤에는 태도가 급 변하는 경우도 있다. 한 살 나이를 차이로 위아래로 서열이 갈리는 <족보 문화>는 사람들 간 수평적 관계를 만드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독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쉽게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나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반말을 쓰거나 하대하지도 않는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도 만약 친밀한 사이일 경우에는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예를 들어보자. 남편은 독일의 보험회사에서 아이티 직원으로 근무한 지 오 년이 넘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회사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하지만 그는 몇 달 후 몇몇 직원들과 독일의 반말 격인 ‘dutzen’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상대로는 자신보다 어린 수습 직원부터 나이가 50이 훌쩍 넘은 베테랑 직원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남편의 부서에 최근 신입 팀장이 오게 되었는데 그는 남편과 나이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팀장이 자기와 나이가 비슷하다고 해서 그의 업무지시를 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 않다고 했다. 각자 쌓아온 커리어의 방향에 따라 누구는 팀장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나이에 대해 우리만큼 엄격한 규칙을 습득하지는 않는다. 같은 학급에 종종 유급이나 늦게 학교를 다니게 된 이유로 한 두 살 많은 학생들이 있기도 하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도 늘 동갑 친구 하고만 노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경우에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한 두 살 차이로 “야 너 나보다 어리니까 형(또는 오빠)라고 불러!”하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나이에 따라 너무 많은 호칭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된 후로부터 나이와 뗄 수 없는 호칭이 붙는다. 오빠, 언니, 누나 그리고 동생은 단 한 살 차이로 서로의 호칭을 바꾼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는 학교에 입학한 순서대로 동기, 선배 그리고 후배로 나누어 부르게 되지만 가끔은 추가적으로 나이에 따라 ‘동기 언니, 동기 오빠’ 등으로 호칭이 붙기도 한다. 동기들끼리 반말을 쓰는 경우에도 ‘언니, 누나, 오빠, 형’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으면 버릇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독일에도 물론 나이에 따라 호칭이 불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도이다. 예를 들어 “나에겐 남동생이 한 명 있어(Ich habe einen jüngeren Bruder)”라고 남들에게 소개를 하지만, 그는 남동생과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지 않고 대신 이름으로 부른다. 나의 남편은 자신보다 네 살 위인 그의 누나를 한평생 이름으로만 불렀다고 한다. 나 또한 남편의 누나를 이름으로 부른다. 그녀와 나는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약 그녀가 한국인이었다면 나는 그녀를 ‘형님’으로 그녀는 나를 ‘동서’라고 불렀을 것이다. 호탕한 성격의 그녀를 나는 매우 좋아하는데, 우리는 만나면 서로 얼싸안고 인사를 하고 다양한 화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와 이렇게 편한 사이가 된 것은 호칭의 덕도 꽤나 컸을 것이다. 어릴 적 나보다 두 살 많은 친오빠를 홧김에 “야!”라고 했다가 후들겨 맞을 뻔한 기억이 슬며시 떠오른다.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할 때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당연히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더욱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쌓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어린 나이에도 다채로운 경험을 하거나 폭넓은 인식을 갖은 사람들도 많다. 남편의 절친인 A는 나보다 두 살이 많고 그의 여자 친구는 나보다 네 살이 어리다. 남편과 A의 여자 친구는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넷이서 함께 간 지난 휴가에서 제일 많은 의견을 내고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 셋을 보살폈던 것은 A의 여자 친구인 J였다.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홍보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업무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오빠, 언니’들은 여행 내내 그녀의 감독하에 시간을 보냈다. 내가 독일에서 알게 된 다른 친한 친구는 나보다 여덟 살이 어린 ‘동생’인데, 그녀를 알게 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녀의 총명함과 어른스러운 생각에 감탄을 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나이에 따른 일차원적인 태도 변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보인 지 오래다.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꼰대>라는 단어는 요 몇 년 사이에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예능프로그램 심지어 기사 등에도 쉴 새 없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라는 신조어는 그런 꼰대들의 화법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본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역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반말하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듯하다. 당연히 ‘동방예의지국’의 ‘유교의 나라’의 사람들이 나이 차이에서 오는 관념들에서 한순간에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사람을 바라보고 또 대하기 시작할 때 관계의 지평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굉장히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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