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머리 뒤쪽이 찌릿하게 울렸지만,
다행히 피가 흐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 진짜 어떤 새끼야..."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골목은 고요했고,
나 말고 다른 이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일단 갈증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멀리 익숙한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평소처럼 가게 안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었다.
계산대로 다가가자
알바생은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고 말했다.
"오백 원입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측면에 갖다 댔다. 하지만 경쾌한 결제음 대신, 알바생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뭐 하시는 거예요?"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알바생이 나를 괴짜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다시 한번 폰을 리더기에
바짝 붙였다.
"삼성페이요. 결제 안 됐나요?"
"삼성... 뭐요?
손님, 장난하지 마시고 카드나 현금 주세요."
장난이라니. 나는 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카드 등록되어 있잖아요. 여기 갖다 대면..."
말을 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편의점 내부 풍경이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매대 위에는 익숙했지만 레트로한 디자인의 껌과 과자들이 놓여 있었고, 다시 보니 편의점 이름도 패밀리 마트였다. 생각해 보니 아까 말해준 가격도 이상했다.
"이거 얼마죠?"
"오백 원이요."
'생수 한 병에 오백 원? 물가가 언제 이렇게 내려갔지?'
나는 당황해서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주머니 구석에 짱박아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잡혔다.
그런데 지폐를 꺼내는 순간,
알바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님, 이거 장난감 돈이에요?"
"네?"
알바생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카운터 아래에서
돈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돈 내시려면 이런 걸 내셔야죠."
알바생의 손에 들린 것은 내가 가진 만 원권보다 커다란 구권 만 원짜리였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허겁지겁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리로 나서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연식 같아
보였고,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 대신 폴더폰이 들려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한 건물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 가자 16강으로!]
"뭐야 지금이 2006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