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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도 서사가 있다.

Part 4. 공감을 선물하기

by 온유

우울의 늪에서 노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


우울에 깊이 빠져 지낼 때면 한없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으킬 수 있을지 참 막막하다. 세상으로 나가는 두려움과 좀처럼 기운 차리지 못하는 몸뚱이, 그 결과 작은 노오력의 움직임과 반복되는 실망. 애써 모아본 긍정 마인드는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성처럼 매가리가 없다.


작가 앨릭스 코브는 '우울의 하강 나선'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울할 때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감정과 신체, 행동 모든 것들이 맞물려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할 때는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 좋다는 걸 알아도 기운이 차려지지 않는 몸이 끌어내리고, 나 자신에게 기분 좋은 작은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미 있는 걸 알아도 스스로의 실수와 실패, 뜻대로 실행 되어지지 않는 일들에 대한 타박이 쏟아져 기분을 끌어내린다.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우울에 깊이 빠진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못했다. 내가 그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보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지만 아주 잠깐일 뿐, 하강나선의 흐름을 노력으로 바꾸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 대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는데 사실은 우울을 벗어나려고만 했지 그 우울을 이해해 보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바라지만, 나의 우울까지 사랑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도저히 사랑하고픈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을 바라볼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에 대해 이해하기는커녕 오래 붙잡고 생각하기도 불쾌하다. 빨리 떨쳐버리고 싶어 다른 재밌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우리들의 우울은 언제나 우리가 바라봐 주기를,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떼쓰듯이 나를 물고 하강나선으로 끌고 가는 우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악역이 주인공이 된 영화처럼 서사가 이해되는 순간이 오고, 온전히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우울까지도 나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 기나긴 여정을 몇 마디 문장으로 요약해 놓고 가능하다고 말하기엔 참 죄송스럽지만 말이다.



당신의 우울의 역사


모두의 우울에는 그만의 서사가 있다. 삶에서 우울을 반복해 온 일들에는 연대기별 흐름이 있을 것이다. 노력의 희망이 보여서 그나마 버텼던 시기, 평온했지만 오히려 우울감은 짙어졌던 시기, 인간관계 상처로 완전히 무너졌던 암흑의 시기까지도. 그런데 잘 살펴보면 외부의 사건과 내면의 우울이 아주 비례하지는 않는다. 별 일 아닌 것 같아도 굉장히 우울해지고, 반대로 힘들어도 버틸만하기도 하다. 우울은 누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 실린, 우울증 약 개발을 위한 생쥐 실험 사진이다. 물에 빠진 쥐들은 평균적으로 15분을 왼쪽 사진처럼 허우적거리다가 이후 오른쪽 사진처럼 체념한다고 한다. 시간만 흘렀을 뿐, 똑같이 물에 빠진 상황이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던 쥐가 체념하면서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바로 그때 체념하도록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차단하는 게 바로 우울증 약이다.




그런데 여기서 열심히 노력하는 시간을 더 길게 늘리는 방법이 있다. 바로 14분쯤 한 번 꺼내주는 것이다. 그다음에 다시 빠진 쥐는 노력하는 시간이 20분으로 늘어난다. 노력에 보상이 뒤따라오면, 그다음에는 희망이 생겨서 더 길게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울하고 아무것도 할 힘이 나지 않는다면, 희망의 지속시간이 다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심리적 보상이란, 참 미묘해서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취업이 되는 보이는 결과물과는 다르다. 사람마다 심리적 보상이 다르기도 해서 내가 느끼는 심리적 보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면 자기 이해와 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곁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체념의 길로 들어가는 사람들


세상에 참 많은 일들이 허우적거린 만큼 보상이 찾아오지 않는데, 특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을 목표로 삼는 습관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이다.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얻고 싶다면,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남을 무시해야만, 발아래에 둬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은 아무리 잘난 사람을 만나도 깎아내릴 것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런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그 사람을 짓눌러 이기고 싶은 목적을 가졌다면, 당신은 삶에서 수없이 보상 없는 노력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나의 경우 불안한 엄마가 그랬다. 불안한 사람은 언제나 '잘못될 것 같은' 일들을 찾는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 칭찬 대신 주의점을 더 알려줌으로써 인정욕구를 좌절시킨다. 나는 무의식 중에 엄마가 더 이상 나를 불안해하거나 걱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자녀들에게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는 영웅이 되는 환상은 너무 매혹적이라서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부모라는 타인을 내 목표로 두었을 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오는 좌절감은 우리를 체념의 길로 들어가게 만든다.



우울에서 빠져나오는 여정


우울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목표보다는 지금 찾아온 우울을 소중한 시간으로 맞이하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 나만의 우울이 어떤 패턴을 지녔는지, 어떤 심리적 보상을 원했고,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꿈으로 쫓았고, 어떤 좌절을 겪었는지 하나씩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기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거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보려는 것, 그게 바로 우울에게 공감을 선물하는 방법이다.


"이유가 있겠지."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좋고 나쁨, 효율과 비효율, 정답과 오답을 판단한다. 그런 판단이 바로 공감의 반대되는 작용이다. 우울의 시간이 비효율적이고, 목표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고, 사회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앞설 것이다. 그런 판단은 모두 우리 마음속 깊은 두려움에서 올라온다. 인생이 망하면 어떡하나, 이대로 영영 사회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등등. 그런 두려움으로 인해 문제점을 판단하고 싶어질 때마다, 판단은 두려움이 하는 일이고, 나의 우울이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하며 내 삶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보길 바란다.


사실 그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점의 판단'보다 '이해와 공감'이 심리적으로는 맞는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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