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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함까지 사랑한다는 것

Part 4. 공감을 선물하기

by 온유

나약함에는 두려움의 기억이 따라온다.


자신의 나약함을 덤덤하게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막상 나의 실패와 좌절, 눈물, 무기력 같은 감정들을 가까운 이에게 고백하려 하면 멋있기보단 초라해지는 느낌이 앞선다. 결국 고백을 삼키고 괜찮은 척 연기한다. 하지만 그 연기의 이면에는 늘 고립이 뒤따른다.


창피당할까 봐, 거절당할까 봐, 책 잡힐까 봐, 별로인 사람이 될까 봐.

당신이 나약함을 고백하려 할 때 어떤 두려움이 뒤따르는가?


나약함에서 연상되는 두려움들은 사실 과거의 기억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 학교에서 분위기를 보며 간접적으로 학습된 것들. 집안에서 무의식 중에 습득한 것 등. 살아가며 보고 듣는 매 순간 속에서 <이런 건 밖에 꺼낼 이야기가 아니야.>가 뇌에서 저절로 학습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두려움은 자연스레 암기된다.


그렇게 학습된 감정을 반복하다 보면 외부의 현실이 아무리 바뀌어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언제나 외롭고, 사람들은 나를 잘 몰라주고, 억울하고, 인정받지 못하거나, 깊이 친해지지 못하는 일들이.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은, 스스로에게서 나약한 부분을 단절시킨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단절을 일으킨다.



나약함의 고백은 강한 연결감을 만든다.


강함을 통해서 인정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약함을 통해서 깊은 연결을 경험한다.


약함을 악용하는 이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서로 더 깊은 관계가 되고자 할 때 '괜찮은 모습'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의 괜찮은 모습만 편집해서 보여주어서는 상대방의 다양한 모습 또한 만나볼 수 없다. 오직 '괜찮은 사람을 대할 때의 모습'만 만나볼 뿐이다. 용기 내어 나의 가려진 부분까지 드러냈을 때, 상대방 또한 그에 맞는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바로 약함을 대하는 태도다. 늘 밝던 사람이 어두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선이 분명하던 사람이 손을 내밀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수많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내 나약함을 스스로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당신은 나약함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것을 드러내는 두려움에서도, 소중한 관계가 나약함으로 인해 망가질 두려움으로부터도. 과거에 나약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들로부터도.


우리는 연결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 연결은 완벽함이 아닌, 불완전함의 고백 위에 놓여 있다. 그 고백이 가능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온전히 스스로 수용하는 느낌. 무엇도 숨기려고 애쓰거나 편집하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숨 쉬고 느끼고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내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나약함 대신에 나약함에 얽힌 두려움을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을 직면한다는 것


두려움을 직면한다는 건, 그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해 주는 일이다. 나약함을 바라볼 때 두려움은 이런 질문들을 만든다.


"나는 지금 이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내 감정은 위험하지 않은가?"

"이 감정을 드러내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지고, 미움받고,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그저 그런 사람으로 존재감이 사라지는 수많은 일들 중 당신의 마음을 자극하는 위기감은 무엇일까? 우리는 두려움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마음에게 던져야 한다.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약한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가?"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마주했을 때, 내 감정은 어떨까?"


이 세 가지 질문을 차례대로 답해보자. 그냥 잠깐 고민하다 잊지 말고, 집요하게 집중해서 내 마음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마음이 진솔한 답을 내어준다. 불안해지고, 불쾌해지고, 따분해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고비들을 견디며, 인내심 있게 다가선다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두려움을 이해하려 할 때, 마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비로소 나 자신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깊은 이해는 공감이 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사랑으로 연결된다.



나약함까지 사랑한다는 것


사랑에 조건이 붙을 때 그것은 힘을 잃는다. 물론 사랑을 얻기 위해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건강하고 성숙하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렇지 못한 순간'을 마주한다. 늘 친절하지만, 힘든 날에는 친절할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순간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내쳐진다면,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약해졌을 때,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하기보다는 그에게서 나약함을 '분리시켜' 주려고 애쓴다. 힘을 내게 하거나, 벗어나서 강해지도록 채찍질을 한다. 나약함 또한 그의 일부분인데 나약하지 않음이 사랑의 조건이 된다.


왜냐하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두려움이 자극된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앞서 말했듯 나의 과거로부터 찾아온 기억이다. 그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조언을 하기보다, 내가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을 피하게끔 하는 조언을 한다.


나약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벗어나려면 나약함 그 자체를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너무 어려운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는지, 타고난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복된 실패로 자신감을 잃었는지, 지난날의 노력에 보상이 뒤따르지 않아 무력감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약함이 불러오는 두려움은 무엇이 위기인지를 자꾸 말한다. 이러면 어떤 큰일이 일어나는지를 위협적으로 조급하게 닦달한다.


나약함에서 빠져나와 성장하고 싶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약함과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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