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 Oct 24. 2021

올라갈수록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면

심리상담으로 얻은 변화들


 술버릇이 있었다. 밤늦게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없던 용기를 내서 취중진담을 하거나, 진상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밤공기가 너무 좋은데,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이 헛헛해서 그랬다. 전화번호 목록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제일 편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실없는 소릴 하곤 했다.


 당시에는 그게 공허감인지 모를 정도로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충 내가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인간은 늘 외로운가 보다 했다. 보여지는 모습만 중요했던 때였다. 내면으로 느끼는 감정에는 무관심해서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해주지 않았다.


 대행사에서 이직하고 또 이직해 비싼 술을 파는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다. 이름도 멋있는 브랜드 마케팅팀은 돈 쓰는 곳이라서 연예인들 광고 찍는데 광고주 자리에도 슬쩍 앉아보고, 파티 VIP석도 앉아보고, 압구정 몰트바 이름을 외우고 다녔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이 더해질수록 스스로 빛 좋은 개살구 같다고 느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이 생각이 짙어지면서 갈수록 일도 못하고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노력해서 올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근본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라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들 똑똑하고 자연스러워 보였고 나는 겉모습만 따라 하기 급급한, 속이 텅 빈 존재 같았다. 더 많이 나를 숨기고 지냈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나는 시궁창 같은데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그 차이가 너무 싫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당시엔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인정 욕구의 굴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정받고 싶고, 나 자신은 잘 모르겠고, 그렇게 사람들이 멋있다고 말할 법한 일을 해나갔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것’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었다. 실제로 업무를 열심히 배웠어야 했는데,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급급했고, 부족함은 숨기려 했으니 성장할 수 없었고, 동시에 그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그것이 공허감이었다. 내면에는 아무 것도 채우지 않았지만, 겉은 그럴듯한 상태.


 공허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그 정답은 책에 나와있지 않다. 각자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공허감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고만 노력하다가, 나 자신을 잃어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공허감을 느끼는 이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사람일 것이다.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타인의 기준을 맞추느라, 내가 누구인지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모르고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나는 게 맞아?'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의 이야기이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합리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내 삶의 서사가 모두 녹아있는 고유한 나의 것이다.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세상에 감정만큼 자신 있게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마저도 상황에 적절한지를 따진다면, 당신의 마음은 오랜 시간 참 외로울 것이다.


 욕구도 그렇다. 라깡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아마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큰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면 되는지조차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에 가는 것,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 서울에 아파트를 갖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이것을 원한다고 말하면 어디가서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면할 수 있다.


 고유한 나만의 것을 찾아서 정확히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공허감을 메꾸는 일이다. 나는 자주 부끄럽고, 숨고 싶고, 질투가 나는 감정들을 느꼈다. 그건 곧 나 자신이 늘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부족함을 가려줄 '그럴듯해 보이는' 성취를 통해서 인정 욕구를 채우기를 반복한 것이 나의 20대였다.


 상담을 받으며 나만의 독특한 욕구를 여럿 발견했다. 새로운 지식들을 얻고 그 안에서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통찰의 순간이 나에게는 하나의 큰 욕구였다. 평소 잡다한 생각이 많은 나는, 그런 건 생산성이 없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사색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여러 가지 정보 속에서 연결성을 발견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내면에 쌓아갈수록 나는 스스로가 만족스러웠고, 자신감이 생겼고, 나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방송에서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반한 순간들을 이야기했던 장면이 있다. 의자의 밑면을 정성스럽게 다듬길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인데 왜 다듬느냐 물었다. 이상순은 '내가 보잖아.'라고 답했다 한다. 심리상담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아서 나조차 소홀히 했던 구역을 찾아내고 다듬는 작업이다.


 심리상담소에는 계속 공허감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나타난다. 나도 그들도 모두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랬다. 내면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면이 너무도 중요한 세상이라서 그랬다. 솔직히, 보이는 것을 가꾸어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심리적 보상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크고 많다. 공허한 모두들 뛰어난 생존능력으로 이 사회에 적응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가 자꾸 헷갈린다. 생존하려면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고, 행복하려면 나의 시선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에 능통해 공허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조금은 따뜻하게 나의 시선을 찾아 주자. 어딘가 부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실수 하는, 그저 자연스러운 인간인 나를 계속 바라보고, 응원하고, 위로해보자.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아, 그리고 공허감을 채우고 술버릇은 사라졌다.

 

이전 01화 나에게도 기분 좋은 아침 8시가 올 줄 몰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