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없어졌을 때 그 불안함과 공허함을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정년보다 일찍 퇴직을 결정했다.
명함이 없어진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허전함과 불안감이 생긴다. 그전까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명함을 건네면서 간단히 본인의 소개를 하게 된다. 하는 일과 직책이 내 전부를 나타내 주는 일이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명함이 없어진다. 나를 소개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내 이름과 사는 동네, 가족 이런 것으로 나를 소개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너무 심하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나를 어느 정도 지탱해 준 것이 있다.
수영이다.
엄마의 권유로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울 엄마는 나의 권유로 수영을 몇 년 전에 시작하셨고 지금은 너무 잘한 일이라고 억지로 등 떠밀어준 나에게 고마워하신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도 시간이 생겼으니, 수영을 해보라고 하신다. 너는 어릴 적 조금 배웠으니 쉽지 않겠니? 하시면서 엄마가 잘 못 알고 계신 것이다. 나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 수영장이 있는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적은 없다. 나는 모든 운동을 못하고 하기 싫어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그때부터 들기 시작한 생각은 과연 내가 수영복을 입을 수 있을 것인가? (웃기지만 이게 정말 고민이 되었다.) 탄력을 잃은 내 몸을 다 드러낼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웃긴 일이다.
처음 수영장에 간 날 레인별로 수준 차이가 있고 나는 아이들이 배우는 초보자 풀에 들어가게 된다. 음.파.부터 시작된 나의 수영 시작은 한 달간 초보자 풀에서 발차기 만을 하게 된다. 잠시 쉴 때면 눈을 들어서 잘하는 분들을 하염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샤워실에서 만나면 '어떻게 하면 수영을 잘할 수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거의 모든 상급자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매일 오면 돼요. 빠지지 말고 그럼 언젠가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꾸준히 수영장에 출석만 하면 됩니다.' 너무 뻔한 답변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몇 년 후 나도 초급자들이 질문하면 똑같이 이야기를 해주게 된다. 이건 진리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갑자기 점프할 수가 없다. 호흡을 배우고, 발차기만 계속 차다가, 키판을 가지고 물에 몸을 띄어 본다.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은 어김없이 흔들이면서 물에 빠지게 된다. 몸에 힘을 빼고 다시 해보세요.라고 코치는 이야기 하지만 몸에 힘을 빼는 게 초보자에게는 제일 어렵다. 한 번은 배영을 하는데, 옆에서 '그렇게 하시면 목에 담옵니다'라고 목에 힘 좀 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듯, 하나하나를 배워가면서 조금씩 속도가 빨라짐을 느낀다.
매일 꾸준히 하다 보니 숨도 쉬어지고, 몸에서 힘도 빠지고 물안에 있는 것이 너무나 평화롭게 되는 순간이 왔다. 나는 접영을 제일 좋아하고 잘한다. 내가 접영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쳐다본다. 물이 거의 튀지 않고 웨이브가 너무 들 좋다고 한다. 그런 시선을 모두 느끼면서 접영을 한다. 너무 개운하고 좋다. 살짝 호흡이 빨라지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싶다.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점이 너무 많다. 처음으로 운동을 배웠으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인생이고 그렇다. 수영 이야기로 책을 한 권 써볼까.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초보자를 조금 넘어선 순간엔 수영이 너무 즐겁다. 수영장에 갈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너무 속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운동을 이렇게 좋아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꼭 슬럼프가 온다. 너무 가기 싫고 폼도 이상하고 속도도 안 난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가 쌩하니 나보다 잘하면 속상하다. 내가 이렇게 승부욕이 있는 인간이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수영복을 새로 산다. 수영모자, 물안경, 오리발, 수영가방 중에 하나를 지른다. 이렇게 나에게 돈을 쓰고 나면 또 얼마간 힘을 내서 수영장에 가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단 말인가.
명함이 없어지고 소위 동네 아줌마(아줌마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지금은 동네 아줌마니까. 하지만 처음 정규직에서 나오면 별 이상한 것에도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가 되었을 때 정말 나를 지켜준 건 수영이다. 가끔 수영복 입은 모습을 수영장 전신 거울에 비춰보면서 '머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데..' 하면서 말이다. 그 거울이 조금 조작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을 완전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게 살짝 잡고 있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해주었다.
운동을 전혀 안 하고 일만 하던 내가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살이 빠졌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이 '요즈음 운동해? 다이어트 하나? 살 빠졌네.' 하는 소리에 '그래?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면서 미소 띨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살이 조금 빠지니 입고 싶었던 옷들의 핏이 살기 시작했다. 그것도 바닥으로 내려가는 자존감을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수영장을 찾는다. 코로나로 가장 힘든 일이 나에게는 수영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영은 내 일상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매일 하던 수영을 못하니 지금 가끔 자유수영을 하고 오면 너무 힘들고 잘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수영 후의 나른함과 커피 한잔을 정말 좋다. 수영 후에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본인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본인을 위해 한 가지는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수영이었는데, 물론 다른 운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운동을 싫어하고 못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아직은 너무 조심스럽지만 다시 물속을 유영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