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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로 충분해

무거웠던 마음에게

by ViDA

나의 여러 마음들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가 떠올랐어. 조성모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 들을 때마다 첫 소절부터 눈물이 흐르는 내 이야기였지만,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어. 발전적인 2절 없이 같은 소절만 여러 번 반복하거든. 가시를 다 걷어내야만 누군가 쉴 수 있는 건 아니더라. 나를 안아주기로 했을 뿐인데, 가시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어. 내 모습 그대로도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야. 언젠가 희망적인 2절도 나오면 좋겠다.


요즘 바람처럼 가볍고 홀가분한 기분이 어색해. 마음에도 무게가 있지. 예전엔 천근만근이었잖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면 ‘초고도 비만’쯤 됐을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참 무거웠어. 잘하고 싶은 마음, 자존심, 온갖 걱정, 두려움과 불안. 그 마음들은 나를 긴장시키고, 일상을 버겁게 만들었어. 시험 기간이면 꼭 배탈이 났고, 어깨는 항상 단단하게 굳어서 아팠어. 발표할 때는 목소리만 떠는 게 아니라 손도 눈에 보일 정도로 떨었고, 아무것도 안 해도 늘 피곤한데 밤마다 잠들기도 어려웠지.


몸에 밴 습관이 무섭더라. 마음은 괜찮은 것만 같은데,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해. 올해 휴직을 한 것도 출근하기 어려운 정도로 몸이 고장 나서였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잘 해내 보려 애쓰다가, 나를 돌보지 못한 거야. 잘하고 싶었어. 좋은 사람이고 싶었어. 도움 되고 싶었어. 그렇게 인정받아야 내 존재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었어. 정작 아무도 다그친 적 없었는데, 스스로 못살게 굴었지. 그 노력의 결과가 결국 병을 얻는 것이라니. 슬프고 괴로웠지. 너에게 귀 기울일 생각은커녕 한동안 너를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어.


복직 후에 너무 많은 과제가 몰아쳤어. 좋은 엄마도, 좋은 교사도 포기할 수 없어서, 잠을 포기했었지. 올해 초부터 몸이 무기력과 어지러움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일은 늘어만 갔어. 약속도 취소하고, 모임도 나가지 못했어. 그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행복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근무했었는데. 고가의 영양 수액을 맞으며 출근을 이어가던 중, 또 다른 사건이 터지니 공 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느낌이 들더라. 건강한 상태였다면 이 정도로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소진된 상태라 견디지 못했나 봐. 다음 날 출근길부터 온몸이 떨리더라고. 병가 초기엔 전신 통증과 무기력 때문에 수액 치료도 버거웠어. 한두 달만에 회복할 상태가 아니라고 해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휴직을 신청한 거야.


과한 긴장 상태를 지속하다가 교감신경이 탈진했대. 다행스럽게도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몇 달째 주사 치료를 이어가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어. 그런데 다시 검사해도 여전히 교감신경 기능이 좋지 않은 거야. 의사 선생님이 도전적인 것을 하며 신체 활동량을 늘리라고 조언하셨어. 쉬는 동안 나를 힘들게 하는 자극이 없으니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극이 있어도 괜찮아야 완전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출산 전에 함께했던 뮤지컬동아리에 다시 문을 두드렸어.


며칠 전에 처음으로 다시 갔는데, 모두 반겨주셔서 감사했어. 예전에 공연을 함께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하면서도 체력적으로는 버거웠었어. 활동을 쉬면서 건강해지면 다시 하고 싶었지. 그런데 건강해지려고 다시 하게 되었네. 마침 결원이 생겨, 예상치 못하게 역할까지 맡게 되었어. 공연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아서, 앙상블만 함께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모임 때는 흥분되고 즐거운 마음이 가득해서 피곤도 잊고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제야 걱정이 몰려오더라. ‘해낼 수 있을까?’ 몸살이 나고 배탈이 난 게 설마 이 때문이었을까.


체력이 없는데도 조금 괜찮은 듯하면 일을 벌이고, 다시 소진되는 나의 패턴이 걱정스럽기도 했어. 하지만 ‘내 선택이 잘못되었나?’라고 의심하는 대신, 그 패턴을 실험해 보려고. 지금까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걱정하느라고 더 힘들었지만, 이제 그런 마음을 비우고 오직 ‘살기 위해서’ 함께할 거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연습을 계속하는 거야. 두렵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잖아? 부딪혀 봐야지.


존재로 충분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든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써 왔어. ‘말’이 존재를 대변할 수는 없는데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쉽게 흔들렸지. 머리로는 아닌 것을 알았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이 곧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러니 가벼운 농담에도 상처를 입었어. 안전하다고 느껴야 장난도 주고받는데, 내 마음은 언제나 경계태세였어. 글을 쓰며 마음을 마주하는 지금도, ‘나는 받아들여지지 못할 거야!’라는 외침이 들려. 거절하는 말 한 조각에도 생각이 ‘이것 봐,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로 흘러가. 내가 맞든 틀리든, 상대가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 어떤 반응도 나의 존재에 영향을 줄 수는 없는데도 말이야.


동아리 함께하는 분이, 내가 2년 만에 왔다는 것도 몰랐대. 계속 단톡방에 있다고 생각했다나. 예전 같으면 ‘역시 나는 존재감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나는 없어도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꼭 가까이 지내고 많은 말을 나누어야 내 존재가 의미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때로는 글 한 편으로도, 눈빛 하나로도, 말없이 떠올리며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존재는 이어지니까.


무거웠던 마음아, 그동안 애썼어. 이제는 짐을 조금 내려놓을래. 나는 이미 존재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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