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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26. 2024

자폐? 멀쩡한 것 같은데? 싸가지 없어, 재수 없어



아래는 제 웩슬러 아이큐 검사결과입니다. 유난히 언어이해가 낮지요.

언어 검사는, 검사자가 제시하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전혀 어렵지 않고, 어쩌면 웩슬러 검사들 중 가장 쉬운 검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쉬운 단어 문제에서도 100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머리로는 알더라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발화의 문제를 넘어서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벅차고, 일상적인 대화 속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거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동년배보다 월등히 앞섰지만, 대화에서는 매번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을 걸면, 그것이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쓰고, 읽고 이해하는 것도 속도는 느렸습니다.)


저의 대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상대가 말을 하면 그 말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되뇌며, 문장을 한 단어씩 해체합니다. 해체한 각 단어의 의미를 파악한 다음, 그들을 연결해 문장을 구성하고 순서대로 이해합니다. 이 과정 없이는 말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에 상대는 벌써 다음 말을 이어나가므로, 이전의 말도 놓치고 다음 말도 따라가지 못해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뒤늦게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듯 ‘띵’ 하며 아침에 들은 말을 이해하게 되거나, 때로는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제 속도에 맞춰 대화를 하려고 하면 너무 늦어져서 상대는 지치고 짜증 나거나, 혹은 대답을 안 하고 무시한다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라오면서 대화의 질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어 빨리 대답하려다 보니 이제는 아무 말이나 내뱉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어 선택도 부적절하게 되고요.





어느 날,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습니다.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한 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다 나아서 좋겠어요. 나가서도 건강하세요."


저는 그 상황에서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최대한 빨리 좋은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 "그쪽도 빨리 나가세요.".....였어요. 정말 저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퇴원하고 며칠 동안 이 말이 제 귀에 맴돌았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같은 병원에서의 일입니다. 제가 책을 읽고 있는데 간호사 한 분이 제 침상 앞으로 다가와 섰습니다. 무언가 질문을 하나씩 하더라고요. 저는 계속 책을 보며 "네", "아니요" 대답을 했지만, 그분은 계속 가지 않았어요.  저는 물었습니다.


"근데 왜 계속 거기 계세요?"

"비비안 씨랑 이야기하려고 있는 거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며 책을 보고 있었고, 그녀는 저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병원이었으니 다행이지, 사회였다면 무례한 사람이라고 또 오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때론 제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휙 돌아서 떠난다고 해요. 그래서 재수 없고, 무례하다는 오해를 아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이는 제가 말의 시작과 마무리의 사인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꺼낸 데는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검사지가 눈에 띄었고, 글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 시작점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들은 종종 지능이 정상 혹은 높은 자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그들의 어려움을 간과합니다. 자폐는 지능에 관한 장애가 아닙니다. 연관이 전혀 없다고 제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능과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기에 이해받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디서든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제가 정말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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